(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국군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일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11일 육군 등에 따르면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초기 국군 1사단장으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끌며 북한의 남침에서 조국을 구한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전투에서 백 장군이 패퇴 직전인 아군을 향해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 전투 승리로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
백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평양 진군의 선봉에 나섰다. 1951년엔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저지했고, 같은 해 겨울에는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였다.
백 장군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불과 33살의 나이로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합참의장 등을 지낸 뒤 1960년 예편했다.
하지만 백 장군에겐 전쟁 영웅뿐 아니라 '친일 논란'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해방 이전에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 탓이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인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와 만주 북서부에 잔존해 있던 대한독립군단을 토벌하기 위한 특수 목적을 띈 독립군 토벌 부대다.
이 때문에 백 장군은 지난 2009년 정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백 장군은 1983년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하지만 자신이 복무한 1943년부터는 간도특설대가 독립군과 전투를 한 적이 없고, 이 때문에 친일 행위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 장군은 지난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해 간 1943년 초 간도 지역은 항일 독립군도, 김일성 부대도 1930년대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밀려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없을 때"였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백 장군의 친일 행적 논란은 최근 현충원 안장 문제로 재점화했다. 일부 여권인사와 시민단체들이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를 '파묘'(破墓·무덤을 파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면서다.
이들이 문제 삼은 현충원 안장 인사들은 대부분 백 장군처럼 광복 전에는 일본군·만주군 활동했지만 광복 후에는 국군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들이다.
백 장군의 장지(葬地)도 우여곡절 끝에 결정됐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는 백 장군의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을 약속했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이러한 결정이 번복됐다.
지난 5월엔 국가보훈처가 백 장군 측을 찾아 장지문제를 논의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국 장지는 서울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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