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선 녹슨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하듯 투자가 답이다. 투자는 온전히 정부의 몫은 아니다. 경제에 핏기를 돌게 하려면 민간의 투자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어려운 위기때마다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그 중심에 삼성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1년여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지난 2018년 2월 복귀한 뒤 마치 평생 속죄하며 살겠다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2018년 8월 6일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해 이 부회장을 만났다. 김 부총리는 이날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일자리만 생긴다면 광화문에서 춤이라도 추겠다"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틀 뒤 삼성은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놨다.
지난해 4월에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000명 직접 고용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에 화답해 정부가 내놓은 투자금액이 향후 10년간 1조 원인 걸 보면 삼성의 투자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만하다.
정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이 자금은 긴급한 경제의 혈맥을 뚫는데 요긴하게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8개월간 31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부회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총수인 그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면 삼성의 어느 누구도 이런 결정을 내릴 순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부회장은 또 다른 사법 리스크에 직면해있다. 검찰이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이르면 이번 주 중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내놓겠다니 봐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미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및 수사 중단 의견을 검찰 수사팀에 권고했다. 학계, 민간의 수많은 법률 전문가들도 수사심의위원회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기소 결정을 한다면 이는 검찰의 '아집'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공백이 생긴 1년간 삼성은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총수의 부재는 현상 유지도 버거울 정도의 치명타였다.
이번에 기소되면 최소 5년간 지리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의 경영은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현상 유지도 힘든데 대규모 투자가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삼성이 투자하기로 한 자금은 313조원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필요한 건 투자다. 검찰의 자존심 때문에 경제 회복의 기회를 날려서는 안될 것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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