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장군묘역 면적 병사의 8배
미국·영국·프랑스·호주 등 동일면적
"계급은 역할일 뿐 신분 아냐" 사상 근간
전두환 정권서 제정 '특혜'··· 폐지는 아직
[파이낸셜뉴스] 장군과 병사는 죽어서까지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할까.
미국·영국·프랑스·호주 등 동일면적
"계급은 역할일 뿐 신분 아냐" 사상 근간
전두환 정권서 제정 '특혜'··· 폐지는 아직
훈련이나 작전 수행 중 사망한 병사의 묘 면적이 퇴역한 뒤 사망한 장군 묘역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국가유공자가 묻힐 수 있는 부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장군에 대해서만 관대한 규정을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장군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사망한 사유보다 생전 계급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립묘지 관리 규정에 현역 군인조차 부당함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어떻게' 죽었느냐보다 '뭐 달고' 죽었느냐?
31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순직한 병사와 퇴역 후 사망한 장군은 현충원에서도 다른 대우를 받는다. 병사를 포함한 영관급 이하 모든 군인은 화장 후 봉분 없이 3.3㎡(1평) 규모 장지에 안장되는 반면, 장군은 퇴역한 뒤 사망한 경우에도 26.4㎡(8평)짜리 묘역에 안치되는 것이다.
군인 등 국가공무원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문제는 국가보훈처가 담당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묘역은 법 제12조가 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의 경우 264㎡, 이외에는 3.3㎡라고 정한 것이 전부다.
물론 예외는 있다. 법 제5조가 규정한 조건에 해당할 경우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묘의 면적을 따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최대 면적은 26.4㎡이다.
해당 규정은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후 사망한 사람’도 포함하고 있어 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장군 퇴역자 등에게 허용된 최대 면적을 묘역으로 할당하고 있다. 즉, 원칙이 아닌 예외조항에 따라 장군에 대해서만 허용된 최대 면적의 묘역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면적뿐만이 아니다. 묘 1기당 국가가 지출하는 잔디 관리비도 장군묘역은 4만7000원, 일반군인 묘역은 4880원으로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군부독재 시절 '특권' 법제화··· 폐지는 번번이 좌절
문제는 장군과 다른 영관급 이하 장교, 부사관, 병사들의 묘역을 구분하고 크기와 관리비에 차등을 둔 것이 예외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의 경우 4.49㎡,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의 국립묘지는 4.95㎡, 프랑스와 독일도 차등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생전 직책이 업무상 지위일 뿐 신분이 아니라는 자유민주주의 평등사상에 근거를 둔 것으로, 선진국에선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태다.
특히 작전이나 훈련 중 사망한 군인조차 받지 못하는 대우를 퇴역 후 사망한 장군이 받는 게 불공평하다는 여론은 군내에서도 공공연한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역 대위는 “지뢰 밟고 장애를 얻거나 포격으로 전신화상을 입은 군인에게 나라가 제대로 보상하지 않아서 뉴스도 나오지 않았나”라며 “일반 군인들은 죽거나 다쳐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보상받는 게 힘든 일인데 장군들은 퇴역해서까지 장군대우를 받으니 누가 나라에 공정함이 있다고 하겠나”하고 비판했다.
매장자가 늘어 장지가 부족해짐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8년 장교와 병사 묘역 통합계획을 스스로 내놓기도 했다. 당초 병사나 부사관과 차등이 있었던 장교 묘역을 통합해 관리하는 안이었으나 이때도 장군급은 논의에서 제외됐다.
이 같은 목소리에 응답해 지난 20대 국회에서 묘역크기와 비석, 장례방식, 봉분 등 이른바 국립묘지 4대 특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끝내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이 처음부터 장군 묘역을 따로 관리한 건 아니다. 1965년 제정된 국립묘지령에선 국가원수 외엔 모두 화장 후 매장이 원칙이었으나 1983년 군부독재정권인 제5공화국에서 장군도 시신을 안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이후 2004년 ‘장군도 화장 후 유골안치를 추진한다’는 국방부 입장이 발표됐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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