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마약을 투약한 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50대 남성이 1심과 달리 2심에서 '고의로 불을 내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한규현 권순열 송민경)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56)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과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7월14일 오후 경기 파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뒤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가 사는 곳은 15명의 입주자가 있는 다세대주택이었다.
이씨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는 인정했지만, 방화 혐의는 부인했다. 마약에 취해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불이 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화재범죄는 고의 여부에 따라 '방화죄'와 '실화죄'로 나뉘는데, 방화죄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반면 실화죄는 고의성이 없으므로 처벌 수위가 방화죄보다 낮고, 일반적으로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1심은 소방서가 작성한 '화재현장조사서' 등의 증거를 바탕으로 이씨에게 방화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화재현장조사서에는 '방화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기재됐는데, 이는 현장에 남은 객관적 현상에 대한 과학적 관찰·추론에 의한 결론이며 나머지 사정들을 보더라도 방화가 넉넉히 추정된다고 1심은 봤다.
또 발화점으로 보이는 침대 매트리스 근처에서는 담배꽁초나 재떨이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이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1심은 "누전이나 담배꽁초 등 다른 실화요인은 전혀 없는데 화재가 급속하게 진행됐다면 합리적으로 이씨의 방화행위를 강하게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재 발생 이후 이씨가 적극적인 진화 시도나 119신고를 하지 않고 집 근처에 있는 본인의 차량에 탑승한 점도 '방화범의 태도'라고 판단했다. 제3자에 의한 방화가능성도 차단됐다.
그러나 2심은 이씨가 불을 낸 고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현주건조물방화 혐의 대신 실화죄를 인정했다.
2심도 제3자 방화 가능성은 없다고 봤고, 이씨가 사건 당일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에서 비이성적 행동을 했을 여지가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이씨가 방화를 했을지 모른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다만 "화재현장조사서의 내용도 실화가능성이 낮다는 취지일 뿐, 이를 완전히 배제하는 취지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연소나 소화 과정에서 담배꽁초 등이 소실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은 법정에서 "보통 방수를 할 때 1㎡당 5~7km의 수압으로 하는데, 이 정도면 컴퓨터 모니터도 1~2m 정도는 충분히 날아갈 수 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에서 실수로 담배꽁초를 제대로 끄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간 사이에 불씨가 이불 등에 옮겨붙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매트리스의 형상이 V(브이)자 패턴이라거나, 그 주변에서 라이터가 발견된 사정으로도 이씨의 방화 고의를 입증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V자 패턴으로 보아 어느 순간 불이 급격하게 번졌지만, 이씨가 실수로 남긴 꽁초의 불씨로 인해 불이 난 경우에도 이러한 형태의 화재흔을 남길 수 있다"며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씨의 습관을 고려하면 라이터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것만으로 방화를 추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이씨는 화재와 관련해 벌금형(3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마약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보석을 허가받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씨는 2심 선고와 함께 다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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