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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증오가 내 엄마의 선량함과 사랑까지 앗아가진 못했다" [Guideposts]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8 17:24

수정 2020.08.18 18:09

총기난사 사건으로 어머니 잃은 샤론 리셔 목사

엄마는 모든 현장을 지켜본 다음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 생각을 하자 분노가 온몸을 감쌌다
법정의 살인자는 후회나 반성하지 않았다
재판중에 느낀 감정을 피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어느날 교회에서 속삭이는 말씀을 느꼈다
"이 분노와 상처를 통과할 준비가 됐구나"
지난 2015년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샤론 리셔 목사는 "증오로 무장한 인종주의자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포함해 신실한 9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들의 선량함과 사랑까지 소멸시키지는 못했다"며 "그들의 선량함과 사랑은 내 안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우리 모두의 안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샤론 리셔 목사는 "증오로 무장한 인종주의자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포함해 신실한 9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들의 선량함과 사랑까지 소멸시키지는 못했다"며 "그들의 선량함과 사랑은 내 안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우리 모두의 안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두려움을 가득 품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으로 향했다. 찰스턴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사랑하던 교회에서 어머니를 죽인 남자가 재판받는 내내 자리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수요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위해 교회에 갔고, 무고한 다른 8명과 함께 총에 맞았다.
우리는 1년 반을 기다렸고, 크리스마스 직전인 지금 재판이 시작됐다.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적어도 나는 그러길 바랐다.

법정은 작았다. 희생자의 직계가족을 위한 공간만 있었다. 사전에 검찰 측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슨 일이 있을지 말해주었고, 법정 예의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감정의 폭발이나 변론 중간에 뛰쳐나오는 일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삶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무시무시한 순간을 되살리면서 내가 뭘 보고 들어야 하는지 아는데 어떻게 거기에 대비한단 말인가. 엄마는 총에 맞은 마지막 사람이었고, 2015년 6월 17일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사망한 마지막 사람이었다.

엄마는 모든 폭력의 현장을 지켜본 다음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 생각을 하자 분노가 온몸을 감쌌다. 법원 목사가 우리와 함께 기도했다. 그의 일이 부럽지는 않았다. 나 또한 목사다. 병원 목사로 일하면서 사람들이 질병, 사고, 폭력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도왔다. 이제 기도는 날 위한 것이다. 증오범죄에 뒤따르는 증오에 억눌리고 싶지 않았다. 내 신앙에 의지하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싶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에워싼 채 자리에 앉았다. 살인자가 들어왔다.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결코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앉아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며 자세도 꼿꼿했다. 후회나 반성의 기미는 없었다. 전율이 날 훑고 지나갔다. 살인자는 겨우 4.6m 떨어져 있었으나, 그와 나 사이의 심연은 건널 수 없었다. 그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어떤 끔찍한 것이 동기가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었지만 납득할 순 없었다. 그저 순수한 악이 존재하는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마더 이매뉴얼 교회의 목사 클레멘타 핑크니도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핑크니의 아내 제니퍼가 첫번째로 증언했다. 제니퍼는 부드럽게 얘기했고, 예의도 있었다. 그날 저녁 일찍 친목실에 들러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했다고 모두에게 얘기했다. 그런 다음 딸을 데리고 목사 사무실로 갔다.

제니퍼가 사무실에 있을 때 총성이 시작됐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제니퍼는 딸과 함께 연결된 사무실로 가서 문을 잠갔다. 총소리가 계속되자 모녀는 책상 아래에 몸을 웅크렸다. 범인이 잠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벌어진 일의 세부사항도 이미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법정 증언 내내 앉아 있는 일은 고문이었다. 피투성이에 시체로 가득한 범죄현장 사진을 보았다. 우리는 총기난사가 있은 다음 날 FBI 요원들에게 이야기하는 범인을 비디오로 보았다.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다고 인정할 때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악마 그 자체였다.

살인마는 실제로 총격 전에 정찰 삼아 교회를 세 차례 찾았다. 그가 그날 밤 성경공부 모임에 왔을 때 교회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오라고 청했다. 엄마가 그를 따뜻하게 환대하며 손을 내밀고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고 얘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범인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모임 사람들이 일어서서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인 바로 그때, 살인자는 반자동 글록45 권총을 꺼내 쏘기 시작했다. 오로지 재장전할 때만 멈췄다. 그 방의 생존자는 셋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내 사촌 펠리시아 샌더즈였다. 아들의 피 속에 누워서 옷에 온통 피칠갑을 하고 자기 몸으로 열한 살 손녀를 덮어서 죽은 척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펠리시아는 2명을 살린 셈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폴리 셰퍼드였다. 우리는 폴리의 가슴 아픈 증언을 들었다. 살인마는 모두를 쏜 다음, 울면서 큰 소리로 기도 드리던 폴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입 닥쳐!"

증오와 악으로 가득 찬 젊은이는 폴리를 쏘지 않겠다고 말했다.

"널 남겨둬야 얘기를 전할 수 있으니까."

그는 폴리가 유일한 증인이기를 바랐다.

검사들은 엄마의 부검 보고서를 공유했다. 엄마를 맞힌 수많은 총알 얘기를 들어야 했다. 탄환이 마치 내 살에 명중한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법정을 떠날 때 기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밀려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머릿속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티끌만 한 위안이라도 줄 수 있는 사소한 일에 매달리는 내 모습을 보았다. 증인들은 엄마의 휴대폰이 어떻게 주머니에서 떨어졌으며, 어떻게 바닥을 가로질러 미끄러졌는지 말했다. 폴리 셰퍼드가 911에 연락했던 바로 그 전화기였다.

내가 말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욕지기가 났지만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총기난사 사건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사형을 골똘히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다면, 그렇게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그런 살인범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사형에 대해 기도도 해보고 책도 읽었다. 살인자를 죽인다 한들 해결되는 건 없었다. 증오를 없앨 수도, 엄마가 돌아올 수도 없었다. 엄마라면 그가 죽길 바라지 않겠지. 엄마를 위해서 그 모든 이야기를 했다.

12월 15일, 배심원단이 협의에 들어갔다. 2시간 후 평결을 듣기 위해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모든 기소 항목에서 유죄였다. 가족들은 서로 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같이 축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리고 아직 크리스마스도 보내야 했다. 엄마 없는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1월, 선고에 맞춰 다시 법정을 찾았다. 검사들은 범인이 감옥에서 쓴 일기를 읽었다.

"명명백백하게 밝혀두고 싶다. 내가 벌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유감스럽지도 않다. 내가 죽인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후회도 반성도 없었다.

무고한 사람들의 친척들이 말할 기회를 얻었다. 사촌 펠리시아는 총격이 있던 그날 밤에 가지고 있던 피투성이 성경을 들고 살인자에게 말했다.

"이걸 볼 때면 예수님께서 나와 당신을 위해 흘리신 피가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가엾게 여기시기를."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그를 응시했다. 그는 내 쪽을 보지 않았으나 모든 얘기를 듣고 있다는 건 알았다.

"당신의 삶이 끝나기 전에 당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비를 부탁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또한 평화와 하나님의 지침을 간절히 바랐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기를 기원했다. 배심원단은 결국 사형을 건의했다. 다 끝났다. 나는 내게 다가온 새로운 소명을 다시 시작했다. 바로 총기폭력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10대였을 때 엄마가 찰스턴 시청에 가서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전하는 사랑과 용서에 관한 설득력 있는 연설을 들으러 가자고 한 적이 있는데, 나 또한 어떻게 연설하라는 소명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는지 말하는 일이다. 재판 2주 후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개프니에 자리한 라임스톤대학교에서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날을 맞아 학생들에게 연설했다. 행사를 위해 녹색 드레스를 입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일은 내면적일 수밖에 없다. 한때 어떤 목사가 용서는 즉각적이어야 한다고 신도들에게 막힘 없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우리 모두 주저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의견은 달랐다. 용서해 보려고 노력하고 애썼으나 알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분노를 그저 묻어버릴 수 없다. 그건 지나치게 위험한 일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벌어진 모든 일과 재판 중에 느낀 모든 감정은 그저 쓸어버리면 안 됐다. 회피하지 않으려 했다.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날 감싸는 따스함과 속삭이는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느꼈다.

"좋아. 이제 시간이 됐구나. 너는 모든 과업을 해냈다. 이 모든 일을, 이 모든 분노와 상처를 통과할 준비가 됐어."

막대한 부담감이 걷혔다. 떠나보내게 되었다.

증오는 이 세상에 실재한다. 하지만 사랑과 정의도 마찬가지다. 증오는 자기의 불꽃을 먹고 자라는 불이다. 마더 이매뉴얼 교회의 그날 밤, 증오는 반자동 화기로 무장한 인종주의자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포함해 신실한 9명을 살해하는 형태로 폭발했다.
하지만 엄마의 선량함과 사랑까지 엄마와 함께 소멸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 안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우리 모두 안에 살아 있다.
세상에는 사랑이 살아 있으며, 사랑이 증오에서 우리를 구해낸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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