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칠곡계모’에게 분노하지만… 옆집아이는 방관한다면 ‘정서적 살인’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8.19 17:26

수정 2020.08.19 18:28

<3부> 아동학대 근절책 찾아라
1. 아동보호 가정문화 배우자
‘미쓰백’ ‘어린 의뢰인’ ‘마더’ 등
아동학대 다룬 영화·드라마 늘어
"도움 필요한 아이들 외면 말아야"
두 딸 입양한 배우 신애라
"아이들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정
부모, 훈육을 분풀이 기회 삼아선 안돼"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 '미쓰백' 리틀빅픽처스 제공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 '미쓰백' 리틀빅픽처스 제공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영화 '어린 의뢰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영화 '어린 의뢰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동학대의 심각성은 대중문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최근 2년간 충무로에선 아동학대 소재 영화가 잇달아 개봉됐다. 지난 6월 발생한 '창녕 아홉살 소녀' 학대사건과 너무나 흡사했던 영화 '미쓰백'(2018년)과 2013년 '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다룬 영화 '어린 의뢰인'(2019년)이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학대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킬미힐미'(2015년)와 아동학대 가해자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의 '붉은 달 푸른 해'(2018년), 학대받는 소녀를 납치하고 그 소녀의 어머니가 되기로 한 여자 이야기 '마더'(2018년) 등 드라마에서도 아동학대 소재가 두루 다뤄졌다.

"학대받는 아이 방관은 정서적 살인"


"한 사람의 영혼이 파괴되는 학대 현장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어.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그 셋 중에 하나만 없어도 불행은 일어나지 않아." 드라마 '킬미힐미'의 대사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대중들은 가해자에게 공분을 쏟아내지만 정작 그 일이 자신의 옆에서 일어나면 방관자가 되기 쉽다. 영화 '미쓰백'으로 데뷔한 이지원 감독도 '도움이 필요해 보였던 옆집 아이'를 방관한 자신을 자책하며 시나리오를 쓴 경우다. 그는 "옆집 아이가 아동학대를 받는 정황이 포착됐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중에 그 집이 이사를 갔다"며 "아무것도 못한 내 자신을 자책하다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미쓰백'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직접적인 학대도 문제지만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방관하는 것 또한 정서적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며 "신고하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결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 칠곡에서 발생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그야말로 주변의 방관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 경우다. 이 사건은 학교, 경찰, 아동보호기관 등에서 학대 사실을 인지한 사람이 37명이나 됐지만 이들이 현실을 방관하면서 피해아동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 '어린 의뢰인'을 창립작으로 내놓은 영화제작사 이스트드림시노펙스의 이진훈 대표는 비상업적인 소재의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이유로 "어른으로서 (피해)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옆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죠. 아이 우는 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됐습니다."

영화 '미쓰백'의 주연배우 한지민도 영화에 출연한 이유로 "미안함"을 꼽았다. 그는 "(시나리오가) 정말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아동학대 현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강했었다"며 "내가 이 역할을 맡는 데 굉장히 어렵고 도전이 필요했지만 그보다는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으로서 (시나리오의) 그 인물들한테 미안한 감정이 굉장히 커 출연했다"고 말했다.

신애라. 뉴시스
신애라. 뉴시스

가해부모와 분리 법적 조치 필요


아동학대는 흔히 훈육을 빙자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훈육은 절대 화가 난 상태에서 하면 안 된다"는 게 '육아의 든든한 조언자'로 떠오른 배우 신애라의 주장이다. 신애라는 배우자 차인표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입양한 두 딸을 키우는 엄마다. 지난 5년간 미국에서 기독교상담학 등을 공부한 그는 요즘 채널A의 육아 솔루션 예능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 중이다.

신애라는 "훈육은 자녀가 잘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하고 교정하는 부모의 노력을 뜻한다"며 "훈육을 할 때는 평소보다 10배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데, 만약 (부모가 훈육을 하려는 시점에) 화가 많이 난 상태라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가 났을 때 (속으로) 열을 셀 수 없는 사람은 부모 자격이 없다는 말도 있다. 훈육을 (아이에 대한) 부모의 분풀이나 참았던 화를 분출하는 기회로 삼으면 안된다"며 "화를 많이 내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며, 특히 어릴 적 체벌은 평생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애라는 또 "세상의 모든 아이는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면서 "그 가정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안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겪는 아이들에게 집은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이나 다름없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18년 2만4604건의 아동학대가 발생했다. 이 중 1만9748건(80.3%)이 가정 안에서 발생했으며, 학대 가해자 중 부모가 76.9%를 차지했다. 또 다른 문제는 누군가 학대신고를 해서 경찰 조사가 이뤄져도 '원가정 보호조치'에 따라 피해아동을 자신의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6월 발생한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부모가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원가정 보호조치를 내렸다가 보름 만에 피해아동이 사망한 경우다.

신애라는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아동학대 피해아동은) 사회가 보호해주거나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어야 한다"며 "입양은 가정을 이루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입양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지만 한 아이의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어린 의뢰인'의 소재가 된 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소녀가 좋은 예다.
이 소녀는 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썼지만 현재 새로운 가정을 찾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실제로 동생은 계모에게 학대를 받다 사망했다.
제작사인 이스트드림시노펙스의 이진훈 대표는 "영화화 당시 (양)부모가 혹시나 과거의 상처가 덧날까봐 우려해 영화 제작을 꺼렸지만 정작 그 아이는 영화화를 찬성했다"며 "그 아이는 아동학대의 심각성이 많이 알려져 자신과 같은 피해아동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고 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