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코로나 만큼 무서운게 굶주림인데" 밥굶는 노인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3 14:32

수정 2020.09.03 15:42

[현장]수개월째 문닫은 탑골공원·경로당…무료급식도 중단
2천원 없어 다방 못 가는 노인들…"1시간째 지하철 계단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의 운영이 다시 중단 됐다. 3일 갈곳 잃은 노인들이 탑골공원 뒤편 골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의 운영이 다시 중단 됐다. 3일 갈곳 잃은 노인들이 탑골공원 뒤편 골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언제부터 밥줄 수 있어요"

서울 종로구 한 무료급식소 앞에서 한 노인이 직원에게 물었다. 태풍 마이삭 영향으로 비가 흩뿌렸던 3일 아침. 노인은 우산을 든 체, 점심 때도 한참 남은 이른 오전 시간에 무료급식소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이 노인은 '언제까지 닫을 지 모르겠다'는 직원의 말에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직원은 "노인에게 코로나만큼 두려운 게 외로움과 굶주림인데 어디 갈 곳은 있으실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로당과 무료급식소 등 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갈 곳을 잃고 떠도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나은 노인들은 다방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길거리나 지하철을 배회한다.

■무료급식소까지 영업 중단
종로 일대에 위치한 노인 관련 시설은 이날 모두 문을 닫았다. 노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탑골공원과 복지센터, 경로당 등은 이미 지난 3월 코로나19 유행 이후 휴업 중이다.

다만 무료급식소는 운영을 해 왔다. 종로에서 28년간 자리를 지켜온 한 무료급식소는 지난 3월부터 급식을 중단했다가 코로나19가 주춤하던 5월 말부터 운영을 재개했다. 거의 모든 노인시설이 중단된 상황에서 이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자 하루 400명이 넘는 노인들이 몰렸다. 급식소 관계자는 구청과 논의한 끝에 탑골공원에 임시 대기소를 설치하고 인력을 지원받아 간신히 배식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에 돌입하면서 이 급식소도 지난 26일부터 운영이 중단됐다.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던 노인들은 당장 끼니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급식소에는 하루에도 10여 명의 노인이 찾아와 "언제부터 밥을 줄 수 있냐"고 묻고 있다.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어려운 형편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도 오지만 가족과 살면서도 집에서 밥 한끼 못 얻어 먹는 분들도 많이 온다"며 "무료급식은 오전 11시30분에 배식이 시작되는데 90여명이 넘는 노인들이 아침 6시30분부터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으려고 하더라. 정말 안타까운 일 아닌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의 운영이 다시 중단 됐다. 3일 갈곳 잃은 노인들이 탑골공원 뒤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의 운영이 다시 중단 됐다. 3일 갈곳 잃은 노인들이 탑골공원 뒤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단돈 몇천원에도 갈리는 '빈부격차'

당장 몇 천원이라도 갖고 있는 노인들은 탑골공원 인근 다방이나 패트스푸드점을 향한다. 종로3가역 앞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늘상 노인들로 붐비는 장소다. 또 한 다방은 이른 아침 시간대임에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다방을 찾는 노인들은 대부분 홀로 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들은 2000원 짜리 커피를 주문한 뒤 하루 몇시간씩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가동되기 때문에 비교적 쾌적한 환경이다. 다방 관계자는 식사할 돈이 없는 노인도 있어서 떡이냐 컵라면을 챙겨주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3년 전 다방을 이어받았다는 60대 문모씨는 "아침 7시에 영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게 앞에서 기다리시는 분도 있다"며 "장사를 하니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형편이 안 좋은 손님이 많아서 그냥 앉아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마저도 갈 형편이 안 되는 노인들은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날 오전에는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지하철 역사에서 비를 피해 앉아있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벽면에는 '환승통로에 앉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지만 갈 곳 없는 노인에게 쉼터는 이곳 밖에 없어 보였다.

지하철 계단에 앉아있던 80대 변모씨는 "쌍문동에서 첫차를 타고 왔는데 비가 와서 1시간 동안 앉아있다"며 "비가 그치면 나가보긴 할건데 딱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다.
집에 혼자 있기 적적하다 보니 매일 나온다"고 말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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