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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동 고분서 금동관, 금귀걸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3 18:33

수정 2020.09.03 18:33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매장주체부의 유물 노출 상태 /사진=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매장주체부의 유물 노출 상태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뉴스] 경주 황남동 고분군에서 신라시대 귀족 여성의 금은보화 부장품이 발견됐다.

3일 문화재청은 황남동 고분 120-2호분에서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 고분은 지난 5월 27일 신라 석곽묘 사상 금동신발이 나왔던 곳으로 추가 정밀 발굴조사에서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등이 나왔다. 특히 이 장신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의 형상대로 발견돼 피장자가 착장된 상태 그대로 확인됐다.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며 이렇게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 상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다.


피장자가 착장하는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사진=문화재청
피장자가 착장하는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사진=문화재청
먼저 지난 5월 금동 달개가 먼저 발견됐던 머리 부분에는 최종적으로 금동으로 만든 관이 출토됐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테가 있었으며,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였다.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의 끝 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는 곱은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가 양쪽에 달려 있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장식의 상단에서도 투조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 투조판이 관모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재청은 이번 금동관이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지역의 금동관 중 가장 화려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금동관 아래 귀 부분에는 금으로 된 굵은고리귀걸이 한 쌍과 남색 구슬을 네 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가 확인됐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됐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돼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는데, 왼손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면 왼손 부분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으며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피장자의 금동신발도 발견됐다. 금동신발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피장자가 신발을 착장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 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피장자의 성별 등을 포함해 추가로 더 밝힐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논의가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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