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일반

글로벌 금융사들, 블록체인을 만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7 11:43

수정 2020.09.07 11:43

[기고]  박진우 해시드 수석심사역
[파이낸셜뉴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자체 토큰 발행을 검토한다고 공식화했다. 그 동안 골드만삭스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5월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새로운 디지털 자산 책임자 매튜 맥더모트(Matthew McDermott)는 8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체적인 법정화폐 기반 디지털 토큰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주요 목표는 근본적인 금융 채널의 디지털화, 신용 및 대출 시장에서의 블록체인 활용,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성에 대한 검토 등이 될 것이라 밝혔다. 또한 그는 ‘이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기존의 개인 투자자에서 기관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미국의 핀테크 기업 ‘스퀘어’가 최근 발표된 2분기 매출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으로만 1조 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는 등, 미국 스타트업들이 블록체인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사들, 블록체인을 만나다

하지만 그동안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던 금융업계의 거물 골드만삭스마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것은 큰 시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3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암호자산이 공식적인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최근 발표된 2020년 세법 개정안에도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가이드라인이 포함되는 등 금융 당국이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도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물밑에서 조용히 블록체인 도입을 준비하고 있던 민간 금융업계의 블록체인 도입 또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격 검증 시스템
금융업계 중에서도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시중 은행들이다. 은행은 블록체인의 활용 사례 중 특히 ‘자격 검증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수 년 전부터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일례로 하나은행과 고려대학교는 올 봄학기부터 학생증 발급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였다. 하나은행이 개발한 블록체인에 고려대학교가 학적정보를 올림으로써, 학생증 발급기간이 기존의 2주에서 2~3일로 줄어들 게 되었다.

신한은행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상품에 블록체인을 도입하였다. 은행이 대한병원의사협의회에 정회원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협의회가 증명서류를 블록체인에 올려 은행과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절차가 대폭 간소화되었다. 이러한 대출절차의 간소화로 인해 대출 건수가 약 25% 증가했다고 한다.

학위위조 논란으로 대표되는 자격 검증 시스템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에 오랜시간동안 대두되었다. 하지만 중앙화된 기관이 검증하는 것 이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나와있는 솔루션들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분산형 신원인증(DID)
자격 검증 시스템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가장 기본적인 사례라고 본다면, 분산형 신원인증(DID)는 보다 정교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블록체인 모바일 신분증인 ‘요티(YOTI)’ 를 사용해 자신의 나이를 인증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이미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캐나다에서도 7개의 은행들이 함께 만든 신원 인증 서비스 ‘베리파이드미(Verified.Me)’ 를 통해 사용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신원을 인증하고 각종 금융 서비스를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도 4개의 DID 연합체가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라온시큐어가 창립하고 BC카드, 롯데카드, 하나은행 등이 참여한 ‘DID얼라이언스’, 블록체인 기술 기업 아이콘루프가 이끌고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삼성증권등이 참여하는 ‘마이아이디 얼라이언스’, 통신3사가 힘을 합친 ‘이니셜DID’,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인플러그가 출범한 ‘마이키핀 얼라이언스’가 있다.

DID는 단순히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단계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정보가 분산 저장되는 특성을 통해 개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관리, 통제할 수 있게되는 장점이 생기게 된다. 이는 곧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GDPR)과 캘리포니아의 소비자 프라이버시 보호법(CCPA) 등의 규제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간단한 예시로,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노출하지 않고도 성인임을 인증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 되는 것이다. 특히 DID의 보급은 많은 불편을 초래해온 공인인증서까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테이블 코인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화폐와 1:1 로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를 일컫는 말로 널리 통용된다. 현재 테더(Tether)사에서 발행한 USDT, 서클(Circle)사에서 비트메인 등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발행한 USDC, 한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업 테라(Terra) 에서 발행한 KRT, 그리고 이더리움 위에서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발행되고 있는 다이(DAI) 등이 유명하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심화된 뒤로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오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지난 4월 새로운 버전의 백서를 발표하면서 올해 안에 자신들의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인 리브라를 출시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다국적 금융기업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은 골드만삭스가 처음은 아니다. JP모건은 서두에서 이야기한 골드만삭스보다 1년 일찍 스테이블 코인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 당시 가칭 JPM코인을 개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비싸고 비효율적인 금융 결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 이라고 밝혔다.

미국으로만 한정해도 중앙예탁청산기관이 연 1,600조 달러에 육박하는 금융결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전 세계로 넓히면 실시간으로 처리되어야할 결제들이 막히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며, 수수료 또한 크게 발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유동성이 묶이는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담보를 제공하여야 하는 금융기관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같은 다국적 금융기업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여 사용한다면 금융 결제에 수반되는 시간과 비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만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자산 수탁 서비스
미국 통화감독청(OCC)는 최근 연방은행과 연방저축협회가 고객에게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화감독청은 암호화폐 지갑에 연동되는 개인키를 보관하는 것 또한 수탁서비스에 속한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독일도 은행법을 개정하여 은행이 고객의 암호화폐를 수탁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등 내로라하는 큰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자산 수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신한은행, 농협, 우리은행 등이 디지털자산 수탁을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특히 KB국민은행은 지난 10일 해치랩스, 해시드, 컴벌랜드코리아와 함께 디지털자산 분야의 전략적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히여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마치며..
앞에서 이야기한 자격검증시스템이나 분산형 신원인증은 그 동안 우리 정부의 가이드라인인 "블록체인 기술은 진흥하되, 암호화폐는 지양한다"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이야기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디지털 자산 수탁 서비스는 단순히 기술로서의 블록체인 범주를 넘어선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금융기관이 없지만, 해외 사례를 볼 때 빠른 시간내에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나 스테이블코인 그 특성상 전통적인 금융과 암호화폐 세계를 연결하는 마중물로서의 의의가 높다.

마지막 퍼즐은 디지털 자산 수탁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로 대표되는, 코로나19로 인해서 가속화된 온라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생필품을 구매하고, 집을 구하고, 많은 정보들을 검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의 정보는 실제로는 오프라인 데이터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 자산 수탁 서비스는 단순히 암호화폐의 수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화폐, 부동산, 미술품 그리고 사유재산의 권리를 논하는 많은 문서들이 디지털 자산화 될 것이며, 이는 곧 미래에 등장하게 될 다양한 자산들을 모두 수탁할 수 있는 광범위한 서비스로 발전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업계는 지난 2017년의 버블 붕괴 이후 지속적으로 성숙되어 왔지만, 당국의 규제에 민감하고 새로운 변화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금융업계의 특성상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해외의 유수 금융기관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특금법 개정을 시작으로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시장을 맴돌고 있다. 이제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이 암호자산 수탁 서비스를 포함한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일반 사용자들을 연결하는 통로로써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사들, 블록체인을 만나다


박진우 수석심사역은 해시드의 공동창업자입니다. 카이스트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세 번의 창업 그리고 한 번의 엑싯을 경험하였습니다.
풀스택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살려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기술지원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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