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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청룡언월도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10 18:08

수정 2020.09.10 18:08

중국 여행 중 곳곳에서 관제묘(關帝廟)를 만났었다. 중국인들에게 군신으로 추앙받는 삼국시대 명장 관우의 사당이다. 그의 칼이 청룡언월도다. 긴 자루에 '언월(偃月)', 즉 반달같이 생긴 칼끝이 특징이다. 관도, 청룡도, 언월도 등은 별칭이다.

"아아 삼한사온도 잊어버린 채/한 곬으로 얼어붙은 외줄기 계절풍 속에서/묻어오는 날라리 녹슨 청룡도가 뭐란 말이냐." 6·25전쟁 때 평양까지 종군했던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시 '벽서'의 한 구절이다. 시인이 실제로 중공군이 이 칼을 들고 밀려오는 걸 본 건 아니겠지만 청룡언월도를 중공군 침공의 상징으로 형상화한 셈이다.

지난 7일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 현장에 '관우의 칼'이 재등장했다.
9일 인도 북부 판공호에서 중국 국경수비대원들 손에 들려서다. 인도 NDTV에 비친 칼의 모습은 뤄양성 관제묘 앞 청룡언월도를 방불케 했다. 양국은 지난 6월에도 국경인 길완에서 충돌해 최소 2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양측은 당시 총과 대포 대신 못이 박힌 몽둥이와 돌로 싸웠다. 1962년 국경전쟁을 치렀던 양국이 2013년 재발을 막기 위해 국경에서 총질만은 피하기로 합의한 까닭이다.

핵보유국인 양국이 왜 원시적 병기로 맞서고 있는 걸까. 각기 자국민의 자존심을 걸고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중국은 길완 충돌 이후 격투기 전문선수로 구성된 부대를 투입했다. 이에 맞서 인도도 티베트 망명자 중심의 특수부대를 배치했다. 특히 반중정서가 커지자 중국산 휴대폰 앱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세계 인구 1, 2위 인구 대국의 국경분쟁은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만은 아니다.
먼 미래일지 모르나, 남북통일 후 국경 너머 중국군의 청룡언월도를 보게 될 것이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더욱이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미국 중심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화하고 있다.
중·인과 미국의 삼각관계에서 우리가 취할 전략적 좌표 설정이 중요한 시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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