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150kg이 넘었죠, 마리당. 한 마리는 총 여러 발을 맞고도 도망갔어요."
해가 다 떨어지지 않은 초저녁 손님들이 빠져나간 제주시내 한 골프장에 야생 멧돼지 3마리가 출몰했다.
정신없이 필드를 파헤치던 멧돼지들은 총소리를 듣자마자 혼비백산 흩어졌지만 2마리는 총구를 피하지 못했다.
나머지 1마리는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도망쳤다.
이날 포획에 나섰던 장호진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지회 사무국장은 "야행성인 멧돼지가 초저녁에 나타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요새는 출몰시간이 빨라졌다"며 "수확철이 되니 멧돼지 출몰 신고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폐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라 자칫하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가을철에 접어들며 야생 멧돼지들이 다시 활발한 먹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농약을 치지 않아 땅속에 굼벵이나 지렁이 등 먹이가 풍부한 골프장은 야생 멧돼지들의 주요 출몰 지점이다.
현재까지 제주시내 골프장에서 포획된 멧돼지는 총 4마리지만, 골프장과 야산의 경계에서 잡힌 개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골프장 관계자는 "언제 나타나는지도 모르게 수시로 내려와서 필드를 다 파헤치고 간다"며 "포획단이 와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용객들이 한창 라운드 중이던 한 골프장 필드에 길을 잃은 새끼 멧돼지 2마리가 나타나는 소동도 벌어졌다.
대낮에 나타난 멧돼지에 놀란 골프장 측이 포획을 요청했으나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오발사고 등의 위험이 커 포획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 골프장은 입구에 야생 멧돼지 포획으로 총소리가 날 수 있다며 주민들의 양해를 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장 사무국장은 "골프장의 경우 멧돼지가 한 번 다녀가면 피해액이 상당하다"며 "기본적으로 잔디가 굉장히 비싸고, 잔디 식재에 투입되는 인건비까지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제주에서 포획된 야생 멧돼지는 제주시 14마리, 서귀포시 47마리, 한라산국립공원 70마리다.
토종 제주 멧돼지는 1900년대에 멸종됐고 지금 출몰하는 멧돼지들은 2000년대 농가에서 가축용으로 사육되다 탈출하거나 방사된 개체들로 추정된다.
2012년에는 포획된 멧돼지의 DNA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야생멧돼지와는 다른 중국에서 들어온 가축용 멧돼지로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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