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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좌승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01 08:00

수정 2021.02.07 02:27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제주=좌승훈 기자] 제주바다는 팔색조다.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대기 중의 습도 차로, 계절마다 혹은 밀물·썰물의 차에 따라, 같은 바다라고 하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같은 빛깔이라 하더라도, 보는 이의 관점과 분위기에 따라 제주의 바다 빛은 변화무쌍하다. 취향의 차다.

제주에서 물빛이 가장 좋다는 협재·금릉 바닷가. 눈부신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 화산섬 비양도는 덤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가졌다.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지금 이 맘 때 이 바다는 연초록이다. 자연의 붓질이 웅혼하게 연초록을 그려 놨다. 눈부시고 아름답다. 마치 중산간의 ‘곶자왈’을 품은 듯하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물빛 좋기로는 타이티나 몰디브 못지않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게 어디 연초록이냐고 반박한다. 연한 옥빛이라고도 하고, 엷은 아쿠아, 코발트 블루도 들먹인다. 그러나 이런 단어 하나로 색의 미묘함을 표현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연초록이 이 시기 가장 아름다운 빛깔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성산 일출의 바다. 어둠을 가른다. 먹빛을 가르며 붉고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그 바다는 이 세상 어느 보석보다 눈부시다.

제주의 서쪽 끝. 고산 차귀도는 홍차빛 일몰이 아름다운 바다다. 온 종일 제주를 비추던 햇살은 섬 한 바퀴를 돌아 이곳에서 한껏 기울어져 미련 없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황홀경을 연출한다.

바다 내 해수 플랑크톤이 넘쳐나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적조현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가을이다. 맑은 건 하늘만 아니다. 바다도 가을의 서정에 담는다. 자연이 정한 하늘과 바다의 경계만 있을 뿐이다. 안덕면 사계리의 ‘절잔개’ 조간대. 아늑한 파도에 하얀 백사장은 가을 햇빛을 받아 은빛이다.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별의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자’던 열정의 바다는 없다. 대신 차분한 안정과 성숙함이 있다.

‘절잔개’ 바로 앞에는 형제섬이 떠있다. 섬에서 섬을 볼 수 있는 것도 색다르다. 섬도 계절을 탄다. 어느 덧 높아진 하늘과 짙어진 바다의 짙푸른 색조에 둘러싸인 가을의 섬은 고독과 청아함이 있다.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바다는 겨울에 가야 제대로 보인다. 텅 빈 바다, 세찬 파도. 바다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안선의 실루엣도 제대로다.

구좌읍 김녕리 바닷가. 텅 빈 백사장과 흰 포말, 코발트빛 바다, 그리고 무채색 하늘. 담백하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을 보는 듯하다. 바다 물결도 연중 이 맘 때가 가장 투명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본다. 걷기의 다급함만 없다면, 잠시나마 세상 욕심과 허황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봄기운이 무르익자, 제주 바다는 청동 빛이 된다. 시리도록 푸르다. 아무리 바람이 매섭고 파도가 거칠어도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물오른 봄 바다에서는 톳이 나오고 연둣빛 감태가 푸르름을 더할 것이다.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제주의 바다색은 계절 뿐 만아니라, 바다 바닥이 암반의 ‘걸바당’이냐, 아니면 뻘이나 모래가 깔려있는 ‘펄바당’이냐에 따라서도 색을 달리한다. 수심 영향도 있다. 물이 깊고 낮음에 따라 쪽빛에서 짙은 감청색으로 물빛이 확연하게 대비된다.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제주 바다는 해가 져도 눈부시다. 갈치와 한치, 멸치 어장이 형성되면, 제주바다는 집어등을 대낮 같이 밝힌 어선들과 은빛 물결로 들썩인다.

남원읍 남원1리 큰엉 조간대는 바람에 깎이고 파도가 후벼놓은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도 숨죽이기 못하고 들썩이는 검은 바다.
숭숭 구멍이 난 현무암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요란하다. 억눌렀던 감정도 자유와 해방감에 파도처럼 꿈틀꿈틀 댄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바다. 그동안 난 왜 저 바다를 잊고 살았을까?

[네모이야기] 제주 바닷빛을 담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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