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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서 들어간 보이스피싱 中조직은 분업화된 기업이었다

뉴스1

입력 2020.10.10 08:00

수정 2020.10.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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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숙련되지 않은 '보이스피싱' 전화는 어딘가 어눌하고 허술하다. 2013년 무렵에는 되레 사기를 당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소재로 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은 체계적으로 분업하며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기업형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2017년 8월 무렵, 중국 옌타이시 등지에서 탄생한 한 보이스피싱 조직도 그렇다. 이 무렵 총책 김용남(가명)을 포함한 간부들은 다수의 조직원들을 모으기 시작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들었다.


간부들은 조직을 '콜센터' '장집' '세탁집' 등으로 나눠 세분화된 역할을 맡겼다. 중국에 있는 '콜센터' 사무실은 피해자들의 연락처 등의 정보를 전달 받아 검사와 수사관을 사칭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으니 현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달하라"는 식이었다.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수거책'의 몫이었다. 수거책들은 한국에서 전화를 받은 피해자들을 상대로 금감원 직원이라고 행세하고, 피해자들이 넘긴 현금을 대포계좌로 입금했다.

보이스피싱 범행에 필요한 대포계좌를 공급하는 역할은 '장집' 사무실에서 맡았다. 이들 역시 한국 내 불특정 다수에게 연락해 "거래실적을 쌓아 대출을 해줄테니 계좌와 체크카드를 보내라"고 꼬드겨 대포계좌를 확보했다. '세탁집' 사무실은 장집이 확보한 계좌를 국내 인출책에게 전달했다. 인출책들은 계좌에 입금된 피해 금액들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송금했다.

조직의 간부급들은 '인사'를 맡았다. 이들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인터넷에 '고수익 알바 구합니다' 등의 광고를 게시하며 조직원으로 가담시킬 사람들을 물색했다. 광고를 보고 연락이 오면 "중국에서 일하면 고수익이 보장된다"며 중국행 항공권까지 제공했다.

조직에 가입하면 사무실과 숙소 생활을 교육하고 보이스피싱 범행을 위한 대본을 주며 암기시켰다. 관리자들은 실적이 우수한 조직원을 칭찬하고 실적이 부진한 조직원은 욕했다. 조직원들은 간부들의 통제 아래 현지 시간으로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규칙적으로 일했고, 근무가 끝나면 마련된 숙소에서 단체 생활을 했다.

간부나 관리자들은 그 밖에도 전화·인터넷 등 통신 유지관리 담당, 개인정보 해킹 프로그램 개발 담당, 신규 조직원 모집 총괄, 조직원들의 통화량 통계와 사무실 시설물 관리 등의 주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총책의 비서로서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도 있었다.

조직 내 보안은 철저했다. 총책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들끼리 개별적 만남을 금지시켰다. 조직원들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 총책은 한국에 일시적으로 귀국한 조직원의 대포폰을 반납하게 하고 개인 휴대전화도 초기화시켰다. 한국에 갔던 조직원이 중국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사무실과 숙소를 옮겼다.

이 같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운영 실태는 중국으로 넘어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했던 한 한국인 남성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지난 2017년 10월, 30대 남성 A씨(35)는 "중국에서 스포츠 복권 일을 하고 있는데 수입이 괜찮다. 하는 일 없으면 같이 중국에서 일하자"는 한 지인의 말에 넘어갔다. 지인은 "못 벌어도 한 달에 300만원은 벌고, 잘하면 1000만원까지 가능하다"는 말로 꼬드겼다.

2018년 1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로 넘어간 A씨는 "사실은 복권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사무실"이라는 사실을 들었지만, 총책을 만나 보이스피싱 범행을 하기로 하고 해당 단체에 가입했다. 그는 5월 초까지 4개월여간 콜센터의 상담원 역할을 맡아 범죄단체 활동을 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이유영 판사는 지난달 23일 범죄단체가입 및 범죄단체활동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및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판사는 "범행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죄질이 불량하다"며 "피고인이 하위 관여자라 하더라도 점조직 형태로 실행을 분담함으로써 전체 범행의 은폐에 기여하고 범행에 중요한 역할을 분담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피고인의 범행 활동 기간 동안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사기죄로 기소되지는 않은 점"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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