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30여년간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경쟁을 막아오던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스타트)이 만료 기한을 약 4개월 앞두고 좌초 위기에 빠졌다. 러시아는 미국의 연장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음달 미국 대선까지 협상을 미루겠다고 선을 그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을 통해 미국이 주장하는 핵무기 동결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언급하며 "미국 협상 담당자들이 상관들에게 대선 전까지 뉴스타트(New START) 연장안에 대한 러시아의 동의를 받았다고 보고하고 싶겠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미·러 동상이몽, 핵확산 고삐 풀리나
앞서 마셜 빌링슬리 미 국무부 군비통제 대통령 특사는 13일 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최한 화상 대담에서 "우리는 사실 러시아가 핵무기 제약 혹은 동결에 동의한다면 뉴스타트를 일정기간 연장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그렇게 하면 미국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빌링슬리 특사는 "우리는 양국간 최고위급에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본다"며 "우리는 합의할 준비가 되어 있고 내일이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가 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소련은 1989년 냉전 종식 선언 다음해 양자간 핵무기 감축을 약속하는 스타트 조약을 맺었다. 스타트 종료 이듬해인 2010년 4월에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0년 기한의 뉴스타트에 합의했다. 조약에 따르면 양국은 2011년부터 조약이 만료되는 2021년 2월 5일까지 핵탄두 보유 숫자를 양국 합해 1550개로 제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 폭격기같은 핵 투발 수단 역시 700개까지 보유하기로 했다.
재임 기간 동안 군축 조약을 3개나 파기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의 유산인 뉴스타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발표에서 뉴 스타트를 아무 전제 조건 없이 5년 더 연장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뉴스타트가 만료된다면 "세계 군비 경쟁을 막을 수단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중국 막으려는 트럼프의 야심
양국 협상 대표인 빌링슬리 특사와 랴브코프 차관은 올해 6월과 8월에 유럽에서 만나 협상을 진행했고 이달 5일에도 만났다. 미국은 러시아의 기대와 달리 연장에 조건을 달았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핵무기를 지적하며 국제 차원의 군축 효과를 내려면 중국 또한 뉴스타트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링슬리 특사는 지난 5월 연설에서 "어떤 합의가 이뤄지든 중국이 3자 구도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이달 12일 발표에서 미국이 중국을 세계 3위 핵보유국으로 과장하며 불공정한 요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3각 핵군축' 제안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려는 술수에 불과하다"며 "미국이 핵군축의 1차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자유롭게 군비를 확장할 구실을 찾고 있다"고 비난했다. 빌링슬리 특사는 이외에도 뉴스타트에 러시아의 단거리 전술 핵무기를 추가하고 검증 체계를 강화하자는 조건을 달았다. 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액턴 핵정책 국장은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러시아가 적어도 전술 핵무기 영역에서 서방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며 절대로 대가 없이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이번 협상에 대해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에 뉴스타트 연장을 이뤄낸다면 외교적 치적을 쌓을 수 있겠지만 러시아가 응할 지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미 정보 관계자들을 인용해 비록 러시아가 트럼프 정부에 우호적이지만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 후보의 경우 조건 없는 뉴스타트 연장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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