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北 주민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6 18:00

수정 2020.10.26 18:00

종전선언 = 평화는 큰 오산
동독주민 민심 사 독일통일
北 인권재단 속히 출범해야
[구본영 칼럼] 北 주민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
한반도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결실의 계절이건만 남북관계는 빈손이다. 북한의 비핵화도, 남북 간 평화 정착도 진도가 나가지 못한 결과다. 지난 10일 김일성광장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대였다. 핵탄두 2, 3개를 탑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선보였으니….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려운 인민 생활상을 거론하며 눈물을 비쳤다.
하지만 강렬한 핵 보유 의지를 드러낸 탓일까. 국내외 관측통들은 대부분 "악어의 눈물"(미국 워싱턴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로 간주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하다는 신형 ICBM이 등장할 땐 만면에 웃음을 보였다.

그 뒤로 '최고 존엄'의 일거수일투족에 같이 울고 웃는 평양 시민들이 겹쳐졌다. 하나같이 검게 그을린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북한의 특권층인 그들의 눈물만큼은 진짜일 거란 느낌과 함께 가슴이 서늘해졌다. 북한판 신정체제가 이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평화통일도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다.

돌이켜 보면 동서독 통일의 일등공신은 동독 주민들이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서독 주민에 비해 복지도 인권도 열악했던 그들이 투표로 시장경제 체제인 독일연방 편입을 결정하면서다. 이는 서독 역대 정부가 양독 간 교류협력 기조는 이어가면서도 동독 주민의 인권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든 진보든 동독의 민심을 사려 한 집권당들이 노력이 통독의 숨은 견인차였던 셈이다.

이에 비해 문재인정부는 김정은 정권과 톱다운 방식 협상에 매달리는 인상이다. 종전선언 등 평화 이벤트에 집착하며 북한의 민주화나 주민 인권개선은 등한시하면서다. 지난 4일은 북한인권법 4주년이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북한인권재단은 여당이 재단이사 추천을 보류해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이 만든 '북한인권 백서'조차 공개를 꺼리고 있을 정도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건 문재인정부가 유독 북한 주민의 인권은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다.

현 정부의 이데올로그들은 이에 대해 '평화가 먼저다'라는 주장으로 방어막을 친다. 북한 정권을 자극하지 않고 협력을 확대하면 남북 모두에 이익이고, 한반도 비핵화도 촉진된다는 논리다. 그러니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됐는데도 김 위원장이 어정쩡한 사과 의사를 전해오자 "계몽 군주"(유시민 작가)라며 '감읍'했을 법하다. 그러나 이런 '한반도 평화론'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일성광장에 초대형 방사포,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 남한이 사정거리인 무기들이 등장하는 순간에 말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남녘 동포들에게 보건(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손을 맞잡길 기원한다"곤 했다. 하지만 "적의 말을 믿지 말고 그 능력을 보라"라는 국제정치의 금언을 상기해 보라. 북한 정권이 핵·미사일 등 '평화 파괴 능력'을 계속 키우고 있다면 종전선언을 골백번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

그렇다면 당국 간 대화 이상으로 북한 체제 저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바깥세상의 정보를 더 많이 알게 하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민주·복지·인권에 기반한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에 동참시켜야 한다.
더뎌 보여도 그 길이 결국 통일의 지름길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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