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떠넘기기식 국가사무 배분… 자치권 침해 법안 손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9 17:45

수정 2020.10.29 18:17

자치분권 사전협의제 도입 1년
매년 1800건 법령안 검토·개선
"입법과정서 지역 의견 반영해
지방분권 제도 역할 강화해야"
떠넘기기식 국가사무 배분… 자치권 침해 법안 손본다
#. A부처는 법률을 개정해 국가사무를 시·도 지자체에 위임했지만, 해당 지자체에 대한 별도의 행정·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사무를 이행할 준비가 안 된 지자체에 일만 떠넘겨버린 셈이 됐다. B부처는 본인들이 수립한 '기본계획'에 따라 시·도지사가 '시행계획'을 마련하도록 해뒀지만, 시·도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 기본계획의 틀 내에서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지자체는 중앙부처가 각 지역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본계획을 세워버리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2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중앙부처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침해하는 이같은 사례를 없애기 위해 작년 7월 '자치분권 사전협의제'를 도입했다.
정부 입법 법률안,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연간 1800여건의 법령안이 대상이다. 입법예고된 법령안에 대해 행안부 장관이 지자체와 외부전문가 자문단 등의 의견을 수렴해 사무배분의 적정성, 지방자치권 침해 여부 등을 검토한다. 정부 입법절차 중 부패영향평가와 유사한 사전 영향평가의 하나다.

중앙부처, 지방자치제 이해 부족


사전협의제가 처음 시행된 후 지난 9월30일까지 검토를 마친 총 1942건 중 85건에 대해 개선을 권고했고, 각 기관들은 권고를 받아들여 법령을 고쳤다. 중앙, 지방 간 사무배분의 원칙과 기준에 부합하도록 체계가 정비됐고, 과도한 국가 지도·감독 수단이 사라졌다.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등 지방자치권의 침해 소지도 제거됐다.

법령 제·개정 권한을 가진 중앙부처가 지역 여건을 무시한 채 법령을 만드는 탓에 행정(인력)·재정 부담을 지자체에 전가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입법예고 제도를 통해 법령안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수렴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도 전문적인 관점에서 검토할 여력이 부족하고, 명확한 불이익이 예상되지 않는 한 사전에 의견을 전달하는 데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법령이 완성·시행된 후에야 피해를 보게 된 사실을 알아차린 지자체가 사후에 법령 개정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령 제·개정 과정에서 입법예고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의견수렴 결과가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치분권 사전협의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소관 부처의 법령안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발의 법률도 포함해야"


자치분권 사전협의제는 정부가 제·개정하는 법령에만 적용된다.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률안은 그 대상이 아니다. 필요한 경우 국회입법조사처 등을 통해 사후적 입법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사후약방문이어서 그 한계가 뚜렸하다. 당초 학계에서는 법률에 근거를 둔 중립적인 제3의 기구가 모든 법률안의 자치권 침해 여부를 판정해 보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독일의 경우 각 주 대표들이 참석하는 '연방참사원'이 연방 법률이 주 자치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때 국회 발의 법률까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다만 행정부가 국회 입법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정부법령안 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행안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든 의원발의 법률안에 대해 자치분권 사전협의에 준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연세대 김남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법령을 만들면 사무처리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50%를 부담하고 지방이 50%를 부담하기로 중앙정부가 정하면, 지자체에 동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면서도 "우리나라는 (지자체의) 입법참여 절차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전협의제 도입으로 한단계 걸러낼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입법과정에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합리적 검토 기준 마련 필수


합리적인 검토기준도 중요한 부분이다. 행안부의 검토의견에 대한 타 부처의 신뢰도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합리적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행안부는 다양한 검토의견을 분석해 검토기준을 보완하고 정립할 방침이다.


담당자 교육도 강화한다. 중앙부처 담당자는 법령안 입안 단계에서, 지자체 담당자는 의견수렴 절차 단계에서 합리적 사무배분과 지방자치권 침해 여부 등을 제대로 검토하면 지자체 권한 침해 등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행안부 이재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자치분권 사전협의제 운영을 내실화해 국가와 지방 간 합리적 사무배분, 실질적인 지방자치권 보장과 지방분권 확대를 위한 제도로서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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