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나의 기도는 연기가 아니었다, 연습하지 않은 진심이었다" [Guideposts]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03 15:50

수정 2020.12.24 10:48

흑인 해방운동가 '해리엇'을 연기한
영화배우 신시아 에리보
노예탈출 원정대를 지휘한 여성
자신을 뒤로한채 타인을 위해 산 것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촬영이 쉽지 않은 날도 있었다
일출을 찍어야 하는 날에 비가 내렸다
환경이 미래를 결정하도록 두지 않고
두려움에도 굴복하지 않은 여성
지난해 개봉한 '해리엇'은 흑인해방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0~1913)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신시아 에리보는 "해리엇 터브먼을 연기한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지만 신앙의 힘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해리엇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봉한 '해리엇'은 흑인해방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0~1913)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신시아 에리보는 "해리엇 터브먼을 연기한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지만 신앙의 힘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해리엇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나의 기도는 연기가 아니었다, 연습하지 않은 진심이었다" [Guideposts]
"컷!" 나는 영화 '해리엇(Harriet·2019년)'에서 노예제도 폐지론자이자 대담하고 강인하며 신실한 여성, 해리엇 터브먼을 연기했다. 이 역을 연기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약이면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신앙에서의 도약이었다.

이야기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과 같다.
해리엇 터브먼은 수차례에 걸쳐 노예가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 70명가량의 노예를 탈출시켜 소위 '지하 철도'(Underground Railroad, 19세기 미국에서 활동한 노예해방을 위해 결성된 비공식 조직망)로 불리는 곳으로 데려간다. 생존도 보장할 수 없고, 그녀 자신이 다시 노예로 끌려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북부 편에서 함께 싸운 그녀는 원정대를 진두지휘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용맹함에 찬사를 보냈다.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역사책에 모두 나오는 내용들이다. 해리엇의 용맹함, 그 근간에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연구하고 인물에 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는 것은 배우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해리엇 터브먼 역에 캐스팅된 데에는 작은 키도 한몫했다. 해리엇은 150㎝를 겨우 넘겼다. 거기에 나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다. 그녀는 강인하고 힘이 넘쳤다. 그 역할을 해내려면 평소보다 더 강도 높게 몸을 단련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극중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배우는 인물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려고 애쓴다. 해리엇의 경우에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심부터 탐구해야 했다. 그녀의 신실함과 대담함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내 자신의 신앙을 탐색하고 역할에 대입했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고 그 위기를 헤쳐 나갈 때 해리엇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는 길은 가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께 더욱 강한 힘을 내려주시고 싸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어요. 내 기도는 언제나 같았죠."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삶은 항상 신앙과 함께였다. 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어머니다. 우리는 저녁식사 전에 함께 기도했고, 어머니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기도 소리를 들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어머니가 샤워를 하거나 욕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드리는 기도를 나 역시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시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는 크게 소리 내어 기도했다. 기도에 관해서라면 한계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셨다.

나는 해리엇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것. 그녀는 기도의 힘으로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평화의 강물이 나를 통해 흐르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제가 이 강물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자신의 안위와 자유는 뒤로한 채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께서 항상 그녀와 함께 그리고 그녀를 위해 계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리라. 나도 그와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장면 장면을 찍을 때마다 나는 해리엇 터브먼이 '되어야' 했다.

촬영장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도 기도를 잊지 않았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우리 육체를 안전하게 보살펴 주소서. 우리의 정신이 깨어 있게 해주시고, 해리엇이 머무를 장소를 안전하게 보살펴 주소서. 해리엇을 이곳으로 불러 주소서."

하루를 무사히 통과할 힘과 가장 진실된 목소리로 이야기할 힘을 주시고, 해리엇 터브먼이 우리를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영화 촬영은 수없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해리엇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처참했다. 사춘기 소녀 시절, 해리엇은 난폭한 노예 주인과 한 노예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주인이 노예를 향해 던진 쇳덩어리 추가 빗나가는 바람에 머리를 맞은 뒤 뇌에 영구적 손상을 입었다. 그 후 평생 어지럼증과 두통, 발작에 시달렸다. 발작으로 몸이 요동하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환영이 어른거리곤 했다. 그녀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강인해야 했다. 동시에 노예로서의 삶에 감정 이입도 필요했다. 예속되어 학대받는 것. 발작과 환각 증상. 한 장면 한 장면 연기할 때마다 비참했고 쓰라렸다. 감정적으로 피폐해졌고 완전히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해리엇이 느낀 감정들도 이러했으리라.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바탕 병치레를 하고 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눈을 뜨기도 한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지하 철도'를 통해 위험한 지역으로 숨어들어 갈 때 해리엇이 자주 사용했던 노래가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한 동료가 그녀에게 모세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는데, 별명에 걸맞게 그녀는 해방된 노예들을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면서 '가거라, 모세'와 '약속의 땅으로 가네'를 부르곤 했다. 그 흑인 영가들은 일종의 암호였다. 한밤중 탈출을 도울 때 노래의 운율을 바꿔 부르면 안전하다는 신호였다.

비록 읽고 쓸 줄도 몰랐지만 해리엇은 요령이 있고 지혜로웠다. 기차에서 누군가에게 신분을 들킬 것 같으면 신문을 집어들고 읽는 척했다. 영화에서 한 노예 주인이 그녀의 코앞에서 지명수배 전단지를 흔드는 장면이 있다.

"이 사람 모세 아닌가? 당장 체포해서 감옥에 처넣어야겠군."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사람 아니에요. 키부터 다르잖아요."

그녀가 수줍은 듯 말한다.

그녀의 본명은 아라민타 로스이며, '민티'라고 불렸다.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이름도 바꿨다.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펜실베이니아 협회'에서 벌어졌던 이 역사적인 순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삽입됐다. 레슬리 오덤 주니어가 연기한 윌리엄 스틸에게 자신은 이제 해리엇 터브먼이라고 말한다. 메릴랜드에 아직 남아 있는 남편의 이름에서 터브먼을, 어머니를 기리는 의미로 어머니의 이름 해리엇을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촬영장에서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해리엇이 종종 겨울에 이동했기 때문에 촬영도 추운 겨울에 이뤄졌다. 그녀에게는 그 편이 더 안전했다. 사람들이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겨울에는 발각될 위험도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해리엇이 신앙 안에 머무르기 위해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나도 킴 버렐이나 말리 뮤직 같은 가수들의 복음성가를 들으면서 혹독한 날씨를 견뎠다.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들과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본디 커티스 홀이 연기한 그린 목사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해리엇을 위해, 다가올 여정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은 교회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나는 본디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장면에서 우리가 한 기도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연습하지 않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도였다. 그래야만 했다.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날 촬영장은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연기할 준비가 완벽하게 돼 있지 않았다. 해리엇이 델라웨어주 경계를 넘어가면서 자유의 몸이 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을 앞두고 있었다. 캐시 레몬스 감독은 일출을 담고 싶어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구름이 짙게 깔린 흐린 날이었고, 급기야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로는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얻지 못할 것이다.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해리엇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런 영웅적인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해리엇의 이름으로, 내 이름으로,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이름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주(州) 경계를 넘었다. 그 순간 구름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주황빛 태양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지개 하나가 떴다. 이윽고 무지개 하나가 더 생겼다. 쌍무지개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나님과 해리엇이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메라팀, 감독을 비롯해 촬영장에 있는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화 속 장면은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해리엇 터브먼을 연기한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지만 신앙의 힘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해리엇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때로 역할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환경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두려움에 굴복하기를 거부했으며, 노예제도라는 악에 맞서 싸운 여성이었으므로. 신앙이 이끄는 대로 행한 그녀는 역사를 바꿨다. 해리엇 터브먼은 내 인생도 바꾸어 놓았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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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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