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가. 국립발레단이 드디어 올해 처음 전막 공연을 무대에 무사히 올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봄 예정됐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된 끝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11월에서야 제대로 된 공연을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은 이전보다 더욱 공을 들인 티가 났다.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 '해적'에서 모티프를 따 온 이 작품은 1856년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9월 초연을 했는데 이후 1998년과 2005년 공연을 거쳐 이번이 네번째 무대다.
하지만 앞의 세 번의 공연과 이번 공연은 차원이 다른 공연이다. 3막이었던 원작 발레가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 2막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스토리도 바뀌었고 음악도 달라졌으며 안무 또한 송정빈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했다. 과거 노예시장에서 파샤에게 팔려가는 그리스 소녀 메도라와 귈나라의 캐릭터는 플로리아나 섬의 아름다운 소녀 '메도라'와 마젠토스 왕국의 대사제 '귈나라'로 재설정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성상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수정된 것이다. 노예로 누군가 구원의 손길만을 바라던 여성들은 새롭게 각색된 작품에서 조금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진화했다. 원작에서 해적들은 배가 난파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 해적왕 콘라드는 옆나라를 침범해 노예무역을 당연시 여기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이들과 배신자를 처단하고 해방시키는 홍길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극을 해피엔딩으로 이끈다. 스토리의 진화도 눈여겨 볼만하지만 안무의 구성도 입체적이어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공연은 8일까지 이어진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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