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잊게하는 갈맷빛 차밭, 그안에 머물다 [Weekend 레저]

겨울이 오기 전에
경남 하동
걸음이 느려지는
하동 차마중
은빛 모래밭에 누워
섬진강 달마중

국내 최고, 최장의 하동 집와이어

【파이낸셜뉴스 하동(경남)=조용철 기자】 경남 하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차밭과 섬진강이다. '느림의 미학'을 담은 차밭과 섬진강은 단지 발도장만 찍고 지나가는 여행지가 아니다. 천천히 머물며 음미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낮에는 차밭 어귀에 자리를 깔고 앉아 차를 우려 마시고, 밤에는 섬진강에서 달빛을 감상한다.

하동의 자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알프스 집와이어, 일몰 명소 '스타웨이'도 최근 하동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핫플레이스다.

경남 하동은 신라시대 흥덕왕 때부터 차나무를 재배한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다. 경남 하동을 찾은 여행객들이 정금다원에 펼쳐진 차밭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들쭉날쭉한 야생의 차밭, 제주·보성과는 또다른 매력…
'차 꾸러미' 하나 빌려 나만의 다원 체험

하동은 우리나라 차(茶)의 본고장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 때 지리산 일대에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씨앗을 처음으로 심었다. 그래서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가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도 야생 차밭이 남아있다. 차밭은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지류인 화개천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다습하고 안개가 많으며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비록 요즘은 커피가 대세라지만 하동에선 여전히 차를 선호한다. 차의 본고장답게 어디를 찾아가더라도 일반적으로 차를 내준다. 차는 여기서는 일상이면서 하나의 문화를 상징한다. 대대로 차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 차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하동 곳곳을 다녀보면 소규모 개인 다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어떤 차를 마셔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생활관광 프로그램 '하동 차마실'을 이용해보자. 정기 프로그램과 개별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하동 차마실 가운데 정기 프로그램은 차밭에서 음악 공연도 볼 수 있다. 개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여행객들이 별도로 차밭을 돌아보고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차와 관련된 도구가 들어 있는 차 꾸러미 '키트'를 빌려준다.

최근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개별 프로그램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개별 프로그램을 미리 신청하면 키트를 제공하는 다원을 알려준다. 다원으로 찾아가서 소풍 바구니, 다구, 차, 다식, 돗자리, 보온병 등으로 구성된 키트를 받으면 된다.

안내인이 어디서 차를 마시면 최적의 장소인지도 안내받을 수 있다. 정금다원(정금차밭), 도심다원,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등 풍경이 좋은 장소로 인도하지만 가능한 한 다른 여행객과 겹치지 않도록 최대한 분산시킨다. 차밭뿐 아니라 동정호와 같은 호숫가나 섬진강 변으로 이동해도 된다. 하동 차마실 키트만 있으면 어디로 가든지 나만의 다원이 된다.

풍광 좋기로 유명한 정금다원을 찾았다. 차밭을 지나면 언덕께에 정자가 마련돼 있다. 정자에 오르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초록빛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섬진강 지류와 지리산 자락이 함께 보이는 차밭이 아늑하다. 하동의 차밭 풍경은 제주나 전남 보성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개인 다원이 옹기종기 모여 풍경을 완성하는 하동의 차밭 풍경은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 대규모 차밭에선 느낄 수 없는 하동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돗자리를 깔고 다기를 정돈한 뒤 하동 찻잎을 다관에 넣고 가만히 물을 붓는다. 찻잎이 머금은 향이 물에 충분히 스며들 시간을 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찻잔에 차를 따른 뒤 한 모금 마시면 비록 차에 문외한이지만 풍미를 느끼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과 함께 싱그러운 차밭의 기운을 받는다.

섬진강 백사장에 설치된 인공 달

평사리공원 앞 백사장은 달마중 명소…
구름 낀 날에도 인공달이 충분히 운치 살려

어스름이 깔린다. 섬진강 변으로 향할 시간이다. 달 밝은 밤에 섬진강 은빛 모래밭에 누웠다. 내리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면서 클래식을 듣는다. 하동 섬진강 변에서 진행되는 '섬진강 달마중' 프로그램 중 일부다. 섬진강 달마중 정기 프로그램은 매월 음력 보름과 가까운 주말에 진행된다.

악양면 평사리공원 앞 섬진강 백사장이 섬진강 달마중의 주무대다. 먼저 참가자들은 등불을 들고 달빛이 비치는 은빛 모래사장으로 걸어간다. 곱디 고운 모래 감촉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맨발로 걸어가도 좋다. 둥근 달이 떠있지 않거나 구름이 달을 가리더라도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백사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대형 인공 달이 달밤의 운치를 충분히 살려준다.

백사장 산책을 마치면 인공 달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앉는다. 지역 주민들이 진행하는 음악 공연, 시 낭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달빛 아래에선 시도, 음악도 한층 감미롭게 여행객들의 마음에 다가온다.

백사장에 누워 달과 별을 바라보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을 시간이다. 빛과 소음 공해에 찌든 현대인들의 피로감을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강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면 빛 공해가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는 별이 무성하다. 섬진강 변에 누워서 우리가 잊고 살던 한적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키트를 대여했다면 나만의 달마중을 경험할 수도 있다. 등불, 접이식 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 미니 달 조명, 돗자리, 시집 등이 포함된 키트에는 섬진강 달마중을 즐기는 방법을 담은 안내서도 마련돼 있다.

돗자리를 펴고 누워 밤하늘 바라보기, 미니 달 조명 켜기, 함께 있는 참여자에게 내 목소리로 시 낭송하기,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해 음악 듣기 등 섬진강 달밤을 한껏 즐길 방법을 제공한다.

[e-mail]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