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올해 방송계 최대 히트상품 중 하나인 ‘미스터트롯’은 중장년층의 팬덤문화를 바꾸는 동시에 젊은층까지 트로트라는 장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역대급 경연으로 주목받은 톱7 진출자들은 각각 최종 순위를 떠나 전국민적인 인기를 등에 업게 됐다. 그 외 출연자들도 저마다의 역량을 맘껏 뽐내며 유명세를 탔다.
미스터트롯 파급력은 방송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톱7 진출자 중 한 명인 가수 '영탁'을 모델로 내세워 올해 단숨에 주류업계 다크호스로 등극한 예천양조의 ’영탁막걸리’가 대표적인 예다. 영탁막걸리의 성공은 일견 마케팅 효과로만 비쳐질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톱7 경연 만큼이나 치열한 주류업계의 막전막후가 있었다.
◼︎영탁막걸리 기획에서 출시까지
“지금까지 30년 동안 양조업에 몸담아왔지만 적어도 향후 10년간 '영탁' 만한 모델은 없겠다고 생각했죠.”
백구영 예천양조 대표는 19일 영탁막걸리 탄생 비화를 설명하며 이렇게 술회했다. 그는 미스터트롯 방송과는 별개로 올해 초 영탁막걸리 상표 출원을 앞두고 있다가 운명처럼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영탁막걸리의 '영탁’은 애초 백 대표의 이름에서 딴 ‘영’과 탁주의 ‘탁’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술술 넘어가는 목넘김을 강조하며 20~30대, 특히 막걸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기획하면서 젊은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하는 ‘영(Young)’의 의미도 담았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23일 미스터트롯에서 가수 영탁이 강진의 ‘막걸리 한잔’을 커버한 방송을 접하면서 백 대표는 무릎을 탁 쳤다. 그는 상표출원 후 부랴부랴 상경했다. 가능한 인맥을 총동원해 발품을 팔고 수소문 끝에 어렵게 영탁 측과 연락이 닿으면서 본격적인 섭외가 시작됐다.
물론 발빠르게 움직인 건 백 대표만이 아니었다. 예천양조를 비롯해 이미 열 군데가 넘는 막걸리 업체가 영탁에게 일제히 러브콜을 보내온 상황. 하지만 당시는 한창 미스터트롯 경연이 진행 중이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방송 일정까지 미뤄지면서 영탁 섭외전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장기전이 됐다.
백 대표는 “영탁 측에서 단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고 마지막까지 치열한 제안 경합 끝에 4월에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면서 “이후 영탁 생일인 5월 13일에 맞춰 영탁막걸리를 출시하고 다음날 그를 모델로 한 광고가 첫 방송을 탔다”고 설명했다.
‘영탁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영탁막걸리 판매량은 광고 하루 만에 10배나 늘었다. 관련 검색어로 ‘영탁막걸리 파는곳’이 뜰 정도로 없어서 못 사는 제품이 됐다. 영탁막걸리는 한국방송신문연합회의 ‘2020 소비자가 뽑은 올해의 브랜드 대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트렌드 선도·새로운 미래가치 창출 최우수상’, ‘2020 베스트 전통주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도 전국에서 찾아오는 영탁 팬들로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예천양조 공장은 관광지나 다름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제2의 전통주 전성기 이끈다
백 대표는 30년 넘게 전통주를 만드는 기계, 기구 등을 공급하는 한편 해외영업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양조업 관련 컨설팅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 2018년 본격적으로 전통주를 직접 만들겠다며 예천양조를 세웠다. 영탁막걸리 이전에는 삼강막걸리, 오미자주, 알밤주, 생탁막걸리 등을 생산해왔다.
예천양조는 영탁막걸리의 성공에 힘입어 현재 제2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말 준공 예정으로 제2공장이 가동되면 현재 일 7만병 수준의 영탁막걸리 생산능력이 일 20만병으로 늘어나게 된다. 아직은 생산지역인 경북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영탁막걸리 수요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이제 중국에서도 영탁막걸리를 만나볼 수 있다. 한국과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중국에서도 영탁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최근 중국 상점에도 영탁막걸리가 진열되기 시작했다. 백 대표는 중국 외 다른 국가로의 수출도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예천양조는 내년 초 영탁막걸리 신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100% 찹쌀로 만들어 입에 착 붙는 찰기가 특징인 프리미엄 막걸리 ‘영탁 찐’이 그 주인공으로 내년 설 명절을 앞두고 만나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백 대표는 “주류업계에서 전통주 시장을 전체의 5% 정도로 보는데 과거에 비해 쇠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다”며 “전통주는 농임업인들과 상생하는 뿌리산업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제품을 개발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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