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후보는 대선 공약에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회복과 동맹 강화, 국제 규범과 원칙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가장 먼저 나오는 예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년간 국제무대에서 줄기차게 논란을 일으킨 불확실성,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불신과 국제규범에 대한 불인정의 퇴출이다.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은 인수위 홈페이지(buildbackbetter.com)에 더 구체적으로 4대 중점과제를 적시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경제위기, 인종평등,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그것이다.
학창 시절 신학기에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갖는 설렘은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여 있다. 트럼프가 최악이라고 느낀 사람들에게는 바이든 신정부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정책방향이 장밋빛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위기 대응으로 미국산 구매(Buy American)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면서 노동·환경 의제와 공정무역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정책 협조와 조율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맹과 다자체제를 활용한 상호적 국제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는 더 체계적이고 제도에 기반한 정책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한편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지속되거나 더 심화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세계 경제지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우리나라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했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에 한·중·일 3국과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트럼프 이후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로 점철된 국제통상 무대에서 새로운 무역규범을 제정하고, 향후 아시아 통상정책의 근간으로서 선도적 역할이 기대된다.
바이든 당선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이 주도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철회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 RCEP와 미국의 철회 이후 TPP가 변형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서로 충돌한다는 가정하에 우리의 선택에 대해 진행되는 논의, 특히 미·중 간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은 사실과 다르다. 이미 7개국이 양쪽에 모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CPTPP는 일본이 주도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 일리는 있으나 아직 미국이 TPP (또는 CPTPP) 협정에 복귀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협상을 시작할지는 미지수인 상황에서 시기상조다.
우리의 정책결정에 있어 넓은 시각과 중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과도하게 눈치를 보거나 국내의 일부 이해관계 때문에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에서 좌고우면하다가 또다시 실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외교와 국제통상 분야에서 관련 정책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준비가 시급하다.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국제질서라는 바둑판에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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