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악’ 화구호
【제주=좌승훈 기자】 손이 시린 계절이다.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날 선 바람 춤사위에 체감온도는 더 내려갈 듯. 믿지 못할 것은 여자의 마음? 올 가을은 여자의 마음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 같다. 가을이 훅 지나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는 22일이 첫 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이다. 겨울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질 것이다. 사철과 24절기가 골라야 농사도 순조롭고 사람도 건강하니, 절기를 탓할 것은 아니다.
오전 6시. 표고 1169m, 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악으로 간다. 왕복 1시간 30분가량 어둑어둑한 길.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려 대지를 덮어주고 본질에 서 있다. 생명들을 본연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휴식을 취하려는 듯하다. 지금 이 길이 다른 계절과 다른 점은 사람이 만든 공해로부터 차단된다는 점일 듯 싶다. 찾는 이가 많이 줄었다. 적막하다.
그러나 어승생악에 오르면 마음이 좀 달라진다. 정상은 광활하고 웅장하다. 사방이 탁 트였다.
한라산 어리목광장에 있는 어승생악은 우람한 산체를 자랑한다. 작은 한라산이다. 면적이 254만3257㎡에 비고가 350m로 도내 기생화산 중 안덕면에 있는 군산(283만6857㎡) 다음으로 크다. 높이도 389m인 오백나한에 이어 두 번째다.
■ 탁 트인 전망…추자도·성산일출봉 한눈에
오름 정상까지는 1.3km에 불과하지만 웅장한 Y계곡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 있고, 제주시 도심지와 제주국제공항, 제주바다는 물론, 날이 좋으면 멀리 성산일출봉과 추자도, 비양도까지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쪽에선 다랑쉬오름이 여왕, 서쪽에선 왕이메오름이 군왕이라면, 어승생악은 ‘왕 중의 왕’이다. 황제인 한라산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며 섬의 북쪽을 관장한다.
‘어승생’이란 지명은 ‘어승마(御乘馬)’에서 유래됐다. 높이나 면적은 물론 풍기는 풍채를 보아도, 이름의 유래를 보아도 범상치 않은 오름이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1702)에 ‘어승생(御乘生)·어승악(御乘岳)’으로,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1652)에 “어승생오름은 제주 남쪽 25리의 거리에 있다. 그 산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100보나 된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났다’고 하므로 그렇게 불린다(御乘生岳:在州男二十五里, 其有池周百步, 諺傳比岳之下出, 御乘馬故名)”는 기록이 나온다. 정조(正祖) 21년(1797)에는 조명집(曹命楫) 목사가 산 밑에서 용마(龍馬)가 태어나 조정에 바치자, 어승마(御乘馬)로서 말의 이름을 ‘노정(盧正)’이라고 사명하고, ‘가자(加資)’라는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풍수설에 의하면, 어승생은 궁마어천형·천마유주형(宮馬御天形·天馬遊駐形)이라 하여 하늘나라의 상제(上帝)가 말을 타고 하늘을 달리는 형국이라고 전해진다. 그만큼 좋은 말이 이곳에서 많이 생산되었음을 말해준다.
어승생악은 그러나 명마의 생산지라는 이미지 보다는 제주의 맑은 물을 이야기할 때 더 많이 이용된다. 어승생 수원지의 원래 이름이 ‘한밝’저수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 것이다.
옛날 도내에서 식수문제의 해결은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만큼이나 절실한 문제였다. 어승생 수원 개발은 제주의 먹는 물 해결의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1967년 1월 연두 순시 차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의 근본적인 물 문제 해결을 위해 고지대의 수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어승생과 아흔아홉골, 성판악 수원에 대한 개발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특이한 것은 어승생 개발사업과정에 1967년 ‘국토건설단’이란 이름으로 폭력배 500명이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4개월 동안 공사에 참여했다. 일종의 노력봉사인 셈이다.
■ 오름 정상…전략요충지·일제 침탈의 현장
어승생악은 원추형 화구호를 갖고 있다. 화구의 둘레는 250m, 깊이는 20m가량 된다. 산정호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송이라 불리는 화산재인 스코리아(scoria) 층을 지표수가 통과하지 못해 분화구에 고이게 된다. 분화구 벽 송이 층이 화구 내로 무너져 내리고 점토질의 화산재 층이 쌓이면서 물이 빠지는 것을 막는 일종의 차수벽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일부의 경우는 산중턱에서 샘이 솟아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어승생악 화구호는 큰 비가 와야 물이 고인다. 과거에는 꽤 많은 물이 고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륙화가 진행돼 물 고인 화구호를 보기 어렵다.
어승생악은 또 일제 침탈의 현장이다. 제주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어승생악 정상에는 2개의 철근 콘크리트 토치카와 감시망루가 탐방객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1945년 당시 제주 섬사람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토치카. 굶주림과 치욕 속에 남의 나라 전쟁을 위해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토치카 지하 깊숙이 배어있는 듯하다.
한편 어승생오름 동북쪽 골짜기에는 골머리오름이 있다. 한라산 아흔아홉골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가장 서쪽의 오름이다. 골머리가 있는 아흔아홉골은 원래 100개의 골짜기였는데, 백성들이 두려워하던 맹수들을 모아 없애면서 골짜기 하나가 사라져 아흔아홉개가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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