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졸리는 미술,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 요리, 건축,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련된 동시대적 감성을 담은 출판물로 명성을 쌓은 출판사다. 특히 최근 발표한 로이 리히텐슈타인, 에드 루샤, 리처드 세라, 프랜시스 베이컨 등 미술 거장들의 신간을 비롯해 가치 있는 문화 면면을 기록한 수많은 책을 통해 전세계 독자들의 고른 지지를 얻고 있다.
이번 단행본 발간은 그간 한국의 자연을 점, 선, 면, 색의 기본 조형요소로 환원함으로써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아온 유영국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전세계에 더욱 활발하게 알릴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탈리아 밀라노를 기반으로 아시아·태평양과 중동지역의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이자 에디터로 활동 중인 편집자 로사 마리아 팔보는 서문에서 "유영국의 작품 속 형태들은 특정한 사물에 얽매이지 않은 채 유동적으로 진화하는 동시에, 그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작가 표현의 결정체를 담아낸다. 자연은 부인할 여지 없이 그에게 영감이 되었으며, 경이로움과 겸손함에 기반한 이 특별한 유대는 그가 살면서 경험한 파괴와 비극을 향한 갈망에 맞서는 이로운 해독제 역할을 해주었다"고 평했다.
지난 2016년 작가의 탄생100 주년 기념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김인혜는 독자적인 추상회화 스타일을 확립해가는 작가의 여정을 일제강점기의 대한민국과 일본의 역사적, 미술사적 맥락에서 조명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전관장이자 현재 페루 리마 미술관 관장인 바르토메우 마리는 유영국의 작업을 통해 한국 고유의 아방가르드의 출범을 근대사적 맥락에서 사유했다.
유영국은 1930년대 후반 일제에 의해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절대적인 추상을 통해 이상향을 지향하고자 한 예술적 열망에 힘입어 동경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 일본은 서구의 초현실주의와 구성주의 문법의 영향 아래 다양한 탈회화적 매체를 활용하는 전위예술이 융성하던 시기였다. 유영국은 자유미술가협회, 독립미술협회 등의 그룹활동을 통해 일본 전위예술의 대표 작가들 및 비평가들과 교류하고 전시를 개최하는 동시에 3차원의 공간을 넘나드는 매체인 부조와 사진의 조형가능성을 탐구했다. 이렇게 새로운 조형 언어를 습득하는 동경 유학시절을 지나 귀국 후 1948년 경 신사실파, 1956년 모던아트운동과 같은 그룹활동에 주력했다. 지천명의 나이였던 1964년 신문회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기점으로 그는 격동하는 세계와 주변 자연을 선, 면, 색 등의 기하학적 구조 및 질서로 환원함으로써 조형예술의 영역과 시대 및 사회의 관계를 내면화하고 심화하는 일에 주력했다. 기하학적 조형에 기반한 초기의 절대 추상은 점진적으로 인간과 사회라는 절대적 가치와 등가적 긴장관계를 조성하며 그만의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로 확립됐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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