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한 번도 못 태운 비행기를 죽어서 태워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죠."
제주도민 신모씨(26)는 함께한 지 어느덧 10년을 바라보는 반려견과의 이별을 생각할 때마다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한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사체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동물병원에 위탁해 의료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동물장묘업체에서 정식 장례절차를 거칠 수도 있다.
본인 소유의 땅이라 할지라도 매립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동물장례식장이 없는 제주에 사는 신씨에게 '합법적인' 선택지는 가족 같은 반려견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폐기물로 처리하는 방법 뿐이다.
신씨는 "어떻게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릴 수 있겠느냐"며 "장례식장이 없는 제주에 사니 비행기를 타서라도 강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라고 말했다.
4일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제주도에 등록돼 있는 반려견 수는 3만9000여 마리지만, 도는 현재 등록률이 약 4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등록은 물론 폐사 신고 역시 제때 이뤄지지 않아 생을 마감한 반려동물의 정확한 수를 가늠하긴 쉽지 않다.
사체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도에서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기견 사체 관리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기견의 경우 온갖 유해 야생동물과 함께 제주도 내 쓰레기매립장에 묻혔다.
2017년에는 유기동물 중 안락사 당한 개 2192마리와 자연사한 개 1563마리가 매립 처리됐다.
땅 속에 수만마리의 동물이 함께 묻히며 전염병 전파, 수질 악화 등의 우려가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는 매립장 포화 문제로 유기동물 3829마리의 사체를 업체에 맡겨 처리했으나 유골이 동물사료 원료로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며 큰 논란이 번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주도는 방침을 바꿔 유기견 사체 전량을 의료 폐기물로 도외 반출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지만 제주 동물장례식장 조성 사업은 이를 혐오시설로 바라보는 주민 반발에 부딪쳐 매번 좌초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는 2018년 수립한 동물복지 5개년 계획에 동물장례식장 설치를 과제로 올려 사업을 추진해왔다.
올해만 해도 제주시 애월읍의 한 마을을 장례식장 부지로 낙점하고 주민 협의를 시도했으나 지난 9월 열린 주민총회에서 반대 결론이 나와 사업계획이 백지화된 상태다.
당초 도는 올해 안으로 관련 부지를 마련하고, 내년 중 건립에 착수할 방침이었다.
지난해에도 장례식장 건립을 위해 서귀포시 여러 마을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같은 이유로 없던 일이 됐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예산 확보도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장례식장 조성은 계획 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도유지에 건립하거나 마을 공모를 통해 부지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면서도 "예산이 수반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선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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