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폭발 여객기 비상착륙시켜 구출
여성 조종사 태미 조 슐츠
댈러스로 향하던 사우스웨스트 보잉 737
펑 소리와 함께 추락하기 시작
생사 오가는 위기와 판단의 순간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부기장·승무원·승객 모두 침착하게 대응
20분간의 사투 끝에 필라델피아 착륙
여성 조종사 태미 조 슐츠
댈러스로 향하던 사우스웨스트 보잉 737
펑 소리와 함께 추락하기 시작
생사 오가는 위기와 판단의 순간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부기장·승무원·승객 모두 침착하게 대응
20분간의 사투 끝에 필라델피아 착륙
그때 귀청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우리를 에워쌌는데, 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엔진이 폭발한 데다 다른 일도 벌어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완강한 하강으로 요동치는 중에도 여전히 왼쪽으로 미끄러지고 있던 것이다.
'익숙한 느낌이야.' 산소마스크를 쓰면서 생각했다. 30년 전 해군 비행교관이던 나는 결혼을 몇 달 앞두고 바람이 잔잔하던 어느 날 한 교육생을 데리고 실습을 나갔다. 첫번째 기동훈련은 기어와 플랩을 이용, 실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교육생은 비행기 기수가 떨어질 때 적절한 절차에 따라 조종간의 압력을 풀어주고 중립 후 추력을 올렸다. 그러나 비행기는 실속에서 회복되는 대신 방향을 휙 돌리더니 직선으로 뚝 떨어졌다. 내가 조종간을 잡고 교육생이 고도를 외쳤다. "2만5000, 2만4000…"
상황이 잘 풀릴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당황하는 것은 생각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알았다. 어릴 때 내가 너무 불안해해서 의사가 신경안정제를 권했다. 부모님은 거절했다. 내가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부모님은 내가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태미 조." 아침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으면 아빠가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청바지를 입고 오렴. 헛간 일 좀 도와줄 게 있어." 말을 타는 것이든 여물통을 짓는 일이든 어떤 일에 집중하면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렇게 하면 실패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에너지를 해결책을 찾는 데 쏟을 수 있었다.
"이십. 십구. 십팔. 십칠." 교육생이 외쳤다. 비행기는 통제 불가능했고, 매뉴얼에는 그 상황을 위한 복구 절차가 없었다. '정말입니까, 주님?'하고 생각했다. '딘과 제가 곧 결혼을 하는데, 비상탈출을 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이미 청첩장도 보냈어요. 날짜를 바꿀 수 없습니다.' 흉측한 결혼식 사진을 떠올리자 짜증이 났다. 나는 발로 러더를 쾅쾅 찼다. 그런 다음 조종간을 앞으로 밀어버리고 비상탈출 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비행기는 나선형으로 급강하하며 흔들거렸지만 곧 수평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날은 미 해군 T-2가 아니라 보잉 737이었다. 이 비행기는 궤도의 급작스러운 기동을 대비해 설계돼 있지 않았다. 비행기에 새로운 조작을 하기 전에 안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우선 몇 분 동안 비행기가 하강하도록 놔두었는데, 승객들은 자유낙하 중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오늘 나의 창조주를 만나게 되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상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때 믿을 수 없는 평온이 찾아들었다. 기도와 성경 공부를 하며 '나는 매일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직면한 문제인 비행으로 재빠르게 돌아왔다. 탑승한 승객 144명과 승무원 5명을 구하기 위해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무엇이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비행을 향한 사랑을 주시고, 해군 조종사, 그다음 여객기 조종사의 길로 인도하셨다.
'착륙 공간이 필요해.' 나는 생각했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후 우리는 서남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좌측 엔진의 폭발과 우측 엔진의 추력은 우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했다. 항공교통관제소에 우리 비행기가 하강 중이며, 아마도 엔진 화재로 인한 것 같다고 전했다.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관제사가 말했다. 부기장 대런이 지도상의 필라델피아를 가리켰다. 긴 활주로와 응급의료요원이 현장에 있는 탁월한 선택지였다. "필라델피아입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객실로 신경을 돌렸다. 희망의 메시지가 된 우리의 목적지를 전해야 했다. 나는 기내방송으로 발표했다. "우리 비행기는 현재 하강 중입니다. 우리는 필라델피아 공항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 다음 승무원들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다. 다시 2만피트를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비행을 넘겨받았다. 대런은 시스템과 객실의 연락 업무를 처리했다. 인터컴이 울렸다. 승무원 시니크였다.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창문이 하나 깨졌고, 승객 한 분의 신체가 밖으로 빨려나갔습니다."
다른 승객들이 그 여성의 몸을 안으로 끌어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벌써 시속 300마일까지 속도를 낮췄다. 그때 비행기 속도를 훨씬 더 낮춰, 마침내 그 승객을 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대런과 나에게는 여전히 지상 도달 전까지 할 일이 있었다.
우리는 비상절차 체크리스트에 의지했다. 대런이 질문과 절차를 읽으면, 내가 절차를 따라 말하며, 스위치나 게이지 값을 확인하고, 그가 내용을 수행했다. 항공교통관제소의 끊임없는 질문과 주파수 채널을 변경하는 사이사이에 그 임무를 해냈다. "SWA1380, 하강하면서 6000피트를 유지하십시오." 관제관이 지시했다. "6000피트로 하강." 내가 답했다. 우리는 4000피트까지 성공했다. 우리는 몇 명이 탑승해 있으며 정확히 연료가 몇 파운드 있는지를 전했다. 관제사가 말했다. "SWA1380, 27 좌측으로 착륙합니다."
우리는 다른 주파수를 통해 필라델피아 공항과 이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하강 속도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항공기 속도 그리고 고도를 유지할 추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은 동력을 더하면, 기체의 기수를 우측으로 밀 것이다. 항공기 속도를 유지하고 싶으면 고도를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끝이 안 좋을 수도 있어.' 우리는 주파수를 접근관제소에서 타워로 바꿨다. 타워 관제사가 착륙을 허가했다. 활주로와 일직선이 되려면 90도를 더 꺾어야 했다. 마지막 우측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기 위해 조종제어에 들어갔을 때 나는 기수를 남쪽으로 향하면서 수평비행을 시도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소리 내어 물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활주로를 몇 마일 남겨두고 착륙하지 못하게 하시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주님은 어떤 종류의 폭풍이라도 평온하게 잠재우실 수 있다. 이번 것은 정신적 폭풍우였다. 평온함 속에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우측 엔진의 동력을 끌어올리고, 우측 스로틀을 원상태로 돌려놓은 다음, 우측 방향키의 각도를 높이고 보조날개를 움직여 기체가 오른쪽으로 가게 했다. 몇 초가 몇 시간 같았다. 비행기 기수가 오른쪽으로 빙하고 돌았다. 됐다!
나는 한 번에 착륙을 했다. 대런과 나는 기어, 플랩, 스피드 브레이크가 제대로 설정돼 있음을 확신했다. 활주로 옆에 소방차가 보였다. 비행기는 정상 속도보다 시속 50마일 빠른 190마일로 속도를 늦췄다. 우리는 오전 11시23분 비상착륙에 성공했다.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활주로 끝으로 굴러가며 나는 작게 말했다.
폭발이 있은 지 20분이나 지났다. 나는 우측 엔진을 끄고, 대런과 함께 셧다운 체크리스트를 검토했다. 그리고 대런의 유능한 손에 비행기를 맡기고 승무원들과 승객들로 향했다. 나는 그들의 용기에 감사를 전하고 그들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주방구역은 구급대원, FBI, 승무원들로 가득했다. 누군가 말했다. "이 항공기를 착륙시킨 분과 악수를 하고 싶어요!" "제가 착륙시켰어요." 이렇게 말하고 승객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기내방송기에 손을 뻗었다.
"잘 참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험난한 비행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선하신 하나님, 우리는 지상에 도달했습니다. 저희가 먼저 의료 응급상황을 해결하는 동안 자리에 앉아있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날 많은 일들이 잘못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제니퍼 리오르단은 부상을 당해 살아남지 못했다. 제대로 풀린 일도 많았지만 말이다. 필라델피아는 딱 적절한 거리에 있었다. 내 부조종사는 공군 퇴역군인이었다. 해군 조종사와 비행교관으로서 했던 훈련은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겪은 상황과 같은 재난을 일으키신다고 믿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재난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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