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9 18:00

수정 2020.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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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우리나라 회사들 간의 분쟁인 'LG화학 대 SK이노베이션' 사건의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차세대 2차전지 산업의 주도권과 직결된 이번 판결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더 중요한 본질은 "왜 우리나라 기업들이 한국 법원을 선택하지 않고 굳이 낯설고 고비용이 드는 미국 법원 또는 ITC로 가는가"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 간의 이른바 원정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메디톡스 대 대웅제약' 사건 역시 다음 주 ITC에서 최종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한국 회사인데 굳이 우리나라 법원을 마다하고 미국 법원 또는 ITC로 가서 분쟁을 해결하려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타이탄의 도구'를 찾아서다. 미국으로 가면 원고 회사가 상대의 책임을 입증하는 데 유용한 제도인 e디스커버리(eDiscovery), 즉 전자증거개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미국 연방 민사소송 규칙(FRCP) 26조와 37조 등에 따라서 소송 당사자들은 분쟁사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전자문서들을 보존해서 상대 측과 교환해야 한다. 비닉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 적용되지 않고 영업기밀이 아닌 거의 대부분의 관련 자료를 상대 측으로부터 제공받기 때문에 피고의 책임을 입증해야 하는 원고에게 매우 효과적인 도구다. 무리하게 형사 고소를 병행하는 방법으로 경찰 또는 검찰의 힘을 빌려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피고 기업의 전자문서에서 일명 '스모킹 건'을 찾는 비정상적인 고위험의 편법을 쓸 필요가 없다.

둘째, 더 '관대한 저울'을 찾아서다. 승소 시 손해배상 액수가 한국보다 더 충분히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뿐 아니라 원고 측이 피고 기업의 고의성 또는 무모한 경솔성마저 증명하면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더 현실적인 측면을 보자면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도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고의 또는 과실 책임이 있는 피고 기업은 최악의 결과인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회피하려는 방향으로 의사결정과 선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소모적인 장기전 대신 재판 전 민사합의 성립이 많다.

셋째, '덜 기울어진 운동장'을 찾아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 분쟁을 제기할 때 차라리 미국 법원이 한국 법원보다 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대기업에 맞서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부분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사법 정의가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차라리 미국 법원에 가서 원고에 유리한 전자증거개시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판사 개인이 아닌 12명의 배심원이 결정하는 판결을 기대해 보겠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 기업들 간의 소위 '원정 전쟁의 시대'는 계속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비용의 원정 전쟁 시대를 마감할 수 있을까. 다음 칼럼에서 원정 전쟁 시대를 마감할 수 있는 제도적 제안 등이 이어진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배터리·바이오와 같은 첨단분야에서 우리 기업끼리 미국에서 소송을 벌이는 사례가 잦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총 6회 시리즈 특별기고를 통해 파헤친다.

■약력
△49세 △서울대 미학과 △미국 미시간주립대 로스쿨 법학박사(J.D.)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저서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심재훈 미국 변호사,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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