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아동 성폭력 설명에 ‘하트’가 웬 말···얼빠진 여가부 홈페이지

김나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17 10:19

수정 2020.12.17 13:08

'조두순들' 나오는데 여가부 콘텐츠·홈페이지 관리 미흡
어린이 대상 성폭력 예방 콘텐츠 '부적절한' 기호·삽화
'범죄 심각성 희석한다' 문제제기에 1시간도 안 돼 수정
지난 15일 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폭력이 뭐예요' 안내 콘텐츠의 소제목 옆에 분홍 하트(빨간 동그라미 및 물음표는 별도 표시한 것) 기호가 나와 있다. 사진=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15일 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폭력이 뭐예요' 안내 콘텐츠의 소제목 옆에 분홍 하트(빨간 동그라미 및 물음표는 별도 표시한 것) 기호가 나와 있다. 사진=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 갈무리.
[파이낸셜뉴스] 지난 12일 조두순(68), 내년 9월 김근식(52) 등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들의 잇따른 출소 소식에 전국이 술렁이는 가운데 주무부처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소개글에 '하트'를 붙이고 성범죄 피해 장면을 희화화한 삽화를 넣는 등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성범죄 심각성을 교육, 피해를 예방해야 할 여가부가 책임을 다하기는 커녕 미흡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파이낸셜뉴스가 여성가족부 어린이홈페이지,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최근 급증세인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피해예방 콘텐츠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함에도 되레 성범죄 심각성을 희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설명하는 글에 ‘하트’ 기호를 붙인 게 대표적이다. 여가부 어린이홈페이지 안내글 중 ‘성폭력이 뭐예요’라는 소제목 앞에는 분홍색 하트가 그려져 있다.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설명에 배치한 것이다.
그 아래 6개 소제목에도 전부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여가부 담당자는 “(하트가) 별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가 ‘성폭력 범죄가 가볍게 비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그제야 “아...”라며 심각성을 인지한 듯한 답변을 내놨다. 이후 여가부는 “(하트는) 홈페이지 내 공통 말머리 기호”라며 “성폭력 심각성을 희석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그럴 가능성에 공감해 수정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15일 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 '성폭력이 뭐예요' 관련 삽화가 본지의 문제제기 이후 한 시간 안에 교체됐다. 사진=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15일 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 '성폭력이 뭐예요' 관련 삽화가 본지의 문제제기 이후 한 시간 안에 교체됐다. 사진=여성가족부 어린이 홈페이지 갈무리.
■ 성범죄 장면을 일러스트로..통화 1시간 뒤 ‘삭제’
또 성범죄 장면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방식도 문제가 있었다. 성범죄를 예방, 성인지 감수성이 반영돼야 할 이미지 콘텐츠임에도 성폭력 정의를 소개하는 글에 민소매 차림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핸드백을 든 젊은 여성을 뒤쫓아가는 삽화가 나와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및 연령 이미지를 고정시켜놨을 뿐 아니라, 피해 장면을 부적절하게 묘사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어린이 대상 교육콘텐츠가 성범죄 이미지를 여과 없이 노출, 편견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던 셈이다.

이와 관련 비영리 시민단체 아동안전위원회 이제복 위원장은 “여가부가 (해당 콘텐츠를) 감수 과정에서 통과시켰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여성계에서도 수차례 성범죄에서의 성별·연령 고정관념 문제를 지적했는데, 지금까지 개선을 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물의 크기나 색깔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그저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성범죄의 다양한 유형과 양상에 대해 여가부가 정확히 이해하고, 콘텐츠 제작·검수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 등을 충분히 고민한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지점이다.

심지어 여가부는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홈페이지를 뜯어고쳤다. 문제의 일러스트는 통화 후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홈페이지에서 삭제됐고, 성폭력 설명 내용도 일부 바뀌었다. 그 이유를 물은 질문에 여가부 측은 “특정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화할 수 있고 가해·피해자의 외양묘사가 부적절하게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다”는 답을 내놨다.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대응 요령' 포스터에 "일단 피해요!", "주위 어른을 찾아보세요" 등의 지침이 제시돼 있다. 사진=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대응 요령' 포스터 일부 캡처.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대응 요령' 포스터에 "일단 피해요!", "주위 어른을 찾아보세요" 등의 지침이 제시돼 있다. 사진=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대응 요령' 포스터 일부 캡처.
■ 피해대응 요령이 무조건 "일단 피해요"?
여가부가 내놓은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대응 요령’에서도 허점이 드러난다.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에 게시된 대응 요령은 △일단 피해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요 △보호자에게 전화해요 △주위 어른을 찾아보세요 등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여가부가 아동과 청소년을 하나의 연령대로 묶어 지침을 제작한 탓에 다양한 성범죄 양태에 대응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또 매뉴얼 어디에도 신종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처법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대응 요령은 아동청소년 성보호 관련 단체,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제작했다"고 말했다. 또 내년 예산을 강화해 디지털 성범죄 관련 교육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상황은 심각하다.
주무부처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건수와 성범죄 출소자의 재범률은 높아지고 있다.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 피해건수는 1217건으로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늘었다.
성범죄 재범률 역시 같은 기간 4.4%에서 6.3%로 뛰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김태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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