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빈과 6년 최대 56억 계약
김재호·유희관까지 낚아채나
외국인 투수 2명 계약한 한화
FA시장에 적극 나서지 않아
김재호·유희관까지 낚아채나
외국인 투수 2명 계약한 한화
FA시장에 적극 나서지 않아
두산(당시 OB)은 원년 우승팀이다. 잔치에 술이 빠질 리 없었다. 마침 OB는 술 회사였다. 다른 기업에 비해 술 문화에 관대했다. 오너들의 술 실력도 어지간하다고 전해졌다.
선수들은 벼르고 별렀다. 구단주를 한 번 골탕 먹이자. OB 원년 멤버 가운데는 윤동균, 김우열, 김유동, 계형철 등 내로라하는 야구계 술꾼들이 즐비했다. 만찬주로 '모두모아'가 나왔다.
당시 OB에서 생산되는 모든 술을 한 잔씩 부어 만든 특별 제조주였다. 맥주에서 위스키까지 모든 술이 총망라됐다. 만50세 박용곤 구단주부터 쭉 한 잔 마셨다. 한창 20~30대 선수들이 마다할 리 없었다. 첫잔을 견뎌낸 이는 몇 되지 않았다. 모두 나가 떨어졌다. 두번째 잔이 나왔을 때 살아남은 몇몇 이가 도전했다. 마지막 빈 잔 확인까지 마친 이는 딱 둘 뿐이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천하의 주당 윤동균과 박용곤 구단주였다.
이날 OB 선수들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앞으로 구단주와 절대 술내기를 벌이면 안 된다. 또 하나, OB 구단 오너가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를.
두산이 FA(자유계약선수) 정수빈(30)의 빠른 발을 붙잡았다. 두산은 16일 정수빈과 6년 최대 56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정수빈은 두산보다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한화 대신 원 소속팀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두산은 허경민(30·7년 최대 85억원)에 이어 두 명의 FA를 곰 둥지에 계속 머물게 하는 데 성공했다. 최주환(SK)과 오재일(삼성)은 놓쳤지만 모 그룹의 엄혹한 겨울 사정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다.
두산은 올 겨울 주력 7명을 FA 시장에 내보냈다. '왕조' 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 KIA, SK, 한화 등 실탄이 풍부한 구단들이 알토란 같은 선수들을 낚아채려고 발톱을 세웠다. 그런 와중에 향후 수년간 팀의 버팀목이 되어 줄 두 선수를 건져냈다.
이 둘과 일반적 FA 계약인 4년이 아닌 6~7년 계약한 사실도 놀랍다. 선수들은 총액 규모에서 만족할 수 있고, 구단은 장기적으로 내·외야의 안정을 기할 수 있어서 말 그대로 '윈윈'이다. 김재호(유격수)와 유희관(투수)까지 붙잡는다면 대단한 성과다.
곰은 한가한 겨울잠을 포기했다. 반면 독수리 둥지에는 삭풍이 불고 있다. 내년 농사의 상당 부문에 기여할 외국인 투수 두 명을 총액 105만달러(11억4600만원)에 뚝딱 계약한 후 FA 시장에 좀처럼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고 있다.
한화는 수년 전 정근우(70억원), 이용규(67억원)를 데려 오는데 엄청난 돈을 썼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 상처 때문일까. 이후 적극적으로 FA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한화의 겨울은 그렇게 길어지고 있다.
겨울이 깊어지면 소나무의 푸름은 한결 더 빛나는 법이다. 추사 김정희는 엄혹한 제주 유배 생활 도중 '세한도'(국보 180호)를 그렸다. 어려울 때 기꺼이 주머니를 연 두산의 심정이 이 같을까.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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