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갤러리 '타임 인 스페이스'展
내년 1월 30일까지
내년 1월 30일까지
북촌의 겨울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 창앞에 스위스 디자이너 르 꼬르뷔지에(1887∼1965)의 의자가 놓여있다. 여기에 앉아 거실 한복판으로 시선을 돌리다 멈추게 되는 곳은 벽면에 걸린 겸재 정선(1676~1759)의 '장동팔경 세심대'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답게 강렬한 붓질로 한양의 산세를 웅장하게 담은 그림이다.
또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윤형근(1922∼1973)의 1988년작 '청다색'이 눈에 들어온다. 리넨 캔버스위로 스며든 수직, 수평의 굵은 획이 담백한 여운을 준다. 구석 천장에 달린 핀란드 유리디자이너 헬레나 티넬(1918∼2016)의 1960년산 조명은 그 아래 덩그러니 놓인 권대섭(68)의 2019년작 '달항아리'를 은은하게 비춘다.
이 공간은 이런 식이다. 조선 숙종시대와 20세기·21세기가 섞여있고 유럽과 한국의 작가들 숨결이 조용히 겹쳐있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전시중인 '타임 인 스페이스:더 라이프스타일'은 이렇듯 공간속에 시간을 담았다. 애초 이곳은 1969년 김중업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일반 주택이었다. 수백년 시간을 포개기에 더할나위없이 아늑한 장소다.
입구로 다시 돌아가면, 우봉 조희룡(1789∼1866)의 '홍매도'가 시선을 잡아챈다. 그 아래 1940년대 미국 RCA 빅터오디오와 1973년 필립스 스피커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연주가 솟구쳐나온다. 음악은 서승원(79)의 2017년작 '동시성', 정영도(35)의 올해 작품 'Mud play in my place' 위로도 흘러다닌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마주하게 되는 빛은 이원우(39)의 작품이다. 초록과 적색을 오가는 '너는 나의 불타는 빛'이 다음 길을 비추고 있다. 서구 로코코 양식 패턴의 벽지를 따라 깊숙한 곳까지 오면 이탈리아 유리 명가 지노 비스토시의 1970년산 주황색 화려한 조명에 시선이 꽂힐 것이다. 그 사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통로길 체스터필드 소파 옆에 자리한 것이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카이 크리스티안센(91)의 사이드테이블이다. 그 맞은편 벽에 걸린 조선 중기 문신 신흠(1566∼1628)의 문장을 담은 액자도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디자이너 유혜미(33)가 만든 목조바와 스위스 작가 피에르 잔느레(1896∼1967)의 1965년 스툴이 비스토시의 조명 아래서 빛난다. 영국 작가 대런 아몬드(49)의 2018년작 분절된 거울을 지나 막다른 곳까지 가면 샘바이펜(28)의 과감한 캐릭터 그림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 공간들을 누비며 지금의 시간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구와 조명, 소품들은 코로나19로 지친 육체와 정신에 위로를 전한다. 전시를 직접 기획한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변화무쌍한 시절, 자기만의 성찰과 영감을 가져볼 수 있는 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30일까지.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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