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슈 안녕하슈, 이리 따라 와보슈."
영국 잉글랜드 남동쪽 켄트 지방의 정감 어린 사투리 할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86세의 영국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의 유쾌하고 따뜻한 그림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들어선 관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림만 보면 마치 10대 소녀 같은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가득하다. 팝아트처럼 밝은 색상에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을 보면 마치 어린 아이의 그림 같기도 하다.
로즈 와일리는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 중 하나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작가로서의 인생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75세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34년에 태어난 와일리는 17세에 포크스톤과 도버 미술학교에 입학한 후 런던의 골드스미스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고, 그곳에서 화가 로이 옥슬레이드를 만나 21세에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의 화가 인생은 멈추는 듯했다. 가정주부로 20여년 넘는 시간을 보내던 와일리에게 다시 미술이 다가온 것은 45세였던 1979년이었다. 와일리는 영국왕립예술학교에 다니며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지만 아티스트로서 조명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매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2013년 영국 테이트 브리튼,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어 2014년 영국 현대회화작가에게 주는 상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존무어 페인팅 상'을 수상하고 같은해 76세 생일을 몇달 앞두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영국에서 가장 핫한 신예 작가' 중 한 명으로 뽑히면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현재 그녀는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고상한 척 하는 것은 질색"이라고 말하는 이 할머니 화가는 세상의 모든 뉴스와 역사, 만화, 스포츠, 유명인, 가족, 창 밖 풍경 등 일상에서의 영감을 발랄하고 유쾌한 색감으로 켄트의 아뜰리에에서 그려냈다. 이번 전시는 로즈 와일리의 개인전 중 최대 규모로 그가 그린 회화와 드로잉, 설치미술 등 150여점이 내걸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벽면을 가득 채우는 초대형 작품들이다. 캔버스 가까이에 있으면 그가 그려낸 동화같은 세계에 훅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모습을 그린 작품도 걸렸다. 2014년 작고한 남편이 토트넘 출신이어서 자연스레 토트넘 홋스퍼 FC의 팬이 됐다. 이번 전시에는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 위에 완성된 신작도 최초로 공개됐다. 전시는 내년 3월 28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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