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테슬라 급발진 논란' 소송시 입증책임 누가 질까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20 13:58

수정 2020.12.20 18:47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BMW 급발진 판결
"급발진 아니란 근거, 제조사가 제시해야"
기존 급발진 판례보다 제조사 책임 넓혀
테슬라 사망사고 소송시 영향줄까 관심
[파이낸셜뉴스] 테슬라 모델X 롱레인지 사고로 국내 대형로펌의 대표변호사가 숨진 가운데 급발진 소송 입증책임이 관심을 모은다.

현행 법령과 판례는 제조물책임 법리에 따라 급발진이 아니란 사실을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가 ‘결함이 제조업자만 알 수 있는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재판부가 BMW 소송에서 급발진을 사고 원인으로 인정한 판결을 내놓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향후 법원이 급발진 사건에서 제조사 책임을 더 엄격히 지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달 BMW 급발진 사건 항소심에서 제조사가 유가족들에게 각 4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서울중앙지법이 지난달 BMW 급발진 사건 항소심에서 제조사가 유가족들에게 각 4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급발진' 소비자 입증책임 줄어드나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정진원 부장)이 BMW 사고로 목숨을 잃은 60대 부부 유족 2명이 BMW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유가족들에게 각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BMW 측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잘못 알고 밟아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재판부는 “차량이 사고 장소로부터 비교적 긴 거리인 약 300m를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고속 주행하는 것이 확인되고, 주행 중에 다른 자동차들이 달리지 않는 갓길로 진행했다”며 “고속 주행 중에 계속해서 사고 차량의 비상 경고등이 작동되고 있었고, 사고 무렵 자동차 주행 중에 큰 굉음이 들렸고, 다른 주행 차량과 비교했을 때 사고 자동차는 현저히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 운전자는 갓길로 나오기 전 시속 80~100km로 운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운전자는 과속 범칙금을 받은 전력도 없었다.

1심 재판부터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잘못 알고 밟았다”고 주장한 BMW는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재판은 이르면 내년 초 열린 전망이다.

법조계는 물론 자동차업계에서도 이번 판결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차량 급발진이 아니라는 근거를 BMW가 제시해야 한다고 판결문에 담았기 때문이다.

급발진과 관련한 제품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조업자가 이를 입증해야 하고, 입증하지 못하면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취지다.

해당 법리는 기존에도 있었다. 다만 법원이 제조사에 입증책임을 묻기에 앞서 소비자에게 △본인 과실 없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결함이 제조업자만 알 수 있는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을 먼저 입증하도록 해 실제 승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자동차 사고의 2% 가량이 차량결함으로 판정된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소비자 사이에선 블랙박스를 운전대 아래에 달아 페달을 밟는 걸 촬영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실제로 적외선 블랙박스를 설치해 페달을 밟는 모습을 녹화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9일 서울 한남동에서 발생한 테슬라 모델X 차량 사고로 차주가 숨진 가운데 급발진 입증책임을 제조사가 어느 정도 지게 될지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fnDB
9일 서울 한남동에서 발생한 테슬라 모델X 차량 사고로 차주가 숨진 가운데 급발진 입증책임을 제조사가 어느 정도 지게 될지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fnDB

■"주차장까지 잘 몰고 왔는데···"
이번 판례는 향후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서울 한남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테슬라 사망사고도 그중 하나다.

테슬라는 급발진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대리기사는 차량 제어가 안 돼 벽을 추돌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과 경찰 수사결과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이명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창)는 “기존 급발진 사건에선 (법원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엑셀을 밟았다거나 하는 조작문제지 (차량)결함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많이 했다”며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조작에 문제가 있었는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다만 “대리기사가 차를 잘 몰고 지하주차장까지 들어와서 실수를 할 만한 게 있었을까”라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BMW 항소심 판결과 같이 입증책임을 제조사에 강하게 지울 경우 테슬라가 패소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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