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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오케스트라 같은 심정.. 공연 장담 못해도 멈추진 않을래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28 20:29

수정 2020.12.28 20:29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주연 겸
프로듀서 맡은 정영주
내게 '베르나르다 알바'는
생애 첫 여우주연상 안겨준 작품
초연 때부터 "꼭 다시 해야겠다"
마음 먹고, 결국 직접 제작 나서
정동극장 새해 개막작으로 준비
어떨땐 고문같기도 하지만
이쯤되니 운명아닌가 싶어요
지난해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로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꿰찬 배우 정영주가 내년 1월 22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하는 재연 무대에선 프로듀서 겸 제작자로 나선다. 정동극장 제공
지난해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로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꿰찬 배우 정영주가 내년 1월 22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하는 재연 무대에선 프로듀서 겸 제작자로 나선다. 정동극장 제공
타이타닉의 오케스트라 같은 심정.. 공연 장담 못해도 멈추진 않을래요
"요즘처럼 아침에 눈뜨자마자 뉴스를 확인하고 자기 전에 뉴스를 확인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로서 최선을 다해보고 마지막에 혹시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이건 하늘의 뜻이다 생각하고 수긍해야겠지만 그 전까진 애써보려고요."

한국나이로 50, 지천명의 나이다. 배우 생활만 벌써 26년째다. 15년 전인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처음 받았고, 지난해에는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까지 꿰찼다.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멈추지 않고 달려온 배우 인생, 그 모든 내공에 더해 자신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의 프로듀서로서 올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가 또 다른 시험대가 됐다.
배우 겸 프로듀서 정영주(49) 이야기다.

그는 다음달 22일 정동극장의 새해 첫 기획공연인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주연인 베르나르다 알바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또 동시에 김희철 정동극장 대표와 함께 총괄프로듀서로 무대 안팎을 책임지게 됐다. 이 작품은 정영주에게 여우주연상을 처음으로 안겨준 작품인만큼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뮤지컬 '씨 왓 아이 워너 씨'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존 라키우사가 대본과 작사, 음악을 맡아 지난 2018년 국내에 초연됐다. 미투운동이 확산되며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슈가 확산되던 당시 여배우 10명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의 찬사를 받았다.

코로나 3차 대유행에 한파까지 닥쳐 서늘함이 온몸을 감쌌던 지난 18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만난 그는 "초연 때 공연하면서 언젠가 꼭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재연이 언제 될까 기다리다 결국 직접 제작까지 맡게 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무모하지만 뛰어든 이상 최선을 다하고 있고 책임과 무게를 느끼고 있다"며 "어떨 땐 운명이다 싶기도 하고 어떨 땐 고문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선택했기에 운명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동 인근 연습실에서 17명의 여배우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작품의 완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는 정영주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강제적으로 쉬어본 적이 없는데 계획했던 것들이 외부 요인으로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 정서적으로 지쳐있는 가운데 연습이 시작됐다"며 "프로듀서로서 이런저런 살림살이 고민을 잔뜩하다 연습실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움직이는 동료들을 보면 다른 걱정들이 잠시나마 사라지고 연습에 빠져들곤 한다"고 했다.

초연에서 많은 성원을 얻은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부담을 안고 가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영주도 "배역을 다시 들여다보며 초연 때와 다른 것들이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작의 알바는 전형적인 강인한 여성의 모습이다. 거친 계곡과 산봉우리를 넘어 생긴 상처를 아랑곳하지 않고 어딘가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인물"이라며 "하지만 재연을 준비하며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알바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인했던 인물이 가진 내면의 두려움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더 자신의 성벽을 두텁게 감싸는 모습을 보게 됐다. 결국 그 두터운 벽으로 인해 주위의 인물뿐 아니라 자신도 차단되고 통제를 당하는 인물임을 깨닫고 있다. 이런 깨달음을 이번 공연에서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블랙박스형 소극장에서 했던 초연 때와 달리 액자무대에 올려진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정영주는 "초연 땐 삼면을 둘러싼 관객을 향해 배우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연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전형적인 액자무대로 객석과 동떨어지게 되는 부분도 있다"며 "새로운 동선과 새로운 무대 구성, 색채 이런 부분들이 초연 때와는 많이 달라 또 다른 공연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영주는 사상 초유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배우만 해야겠다 생각하다가 어느 시점에 다른 기회가 오면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한다"며 "잠시 휴식기를 갖는 동안 대학시절 극작과 전공 과제로 썼던 습작들을 보고 이 이야기들을 확장시켜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은 배우 역할이 더 좋고, 아직도 새롭게 도전할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많음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껏 제게 강한 성격의 캐릭터가 주어진 적이 많지만 앞으로는 지금껏 그 누구도 저를 보고 떠올리지 못했던 캐릭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며 "영화 '마더'에 나오는 김혜자 선생님처럼 고통에 순응하는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계획대로 공연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극장 문이 닫힐 수도 있어서다.
하지만 정영주는 멈출 수 없다. "배우들은, 그리고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영화 '타이타닉' 속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처럼 부서진 배 위에서도 연주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연주로 그 배가 다시 바다 위를 항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연주를 멈출 수 없어요."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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