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Yo!Run!Check! 8] 이연주,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파이낸셜뉴스] 축복받은 책이다. 어느 때보다 검찰이 관심 받던 시기에 출간돼 화제의 중심에 선 법무부 장관이 사진기자들 앞에서 보란 듯 꺼내 읽었다.
검찰과의 일전을 벌여온 추미애 장관이 나서서 추천했으니, 어떤 시선으로 검찰을 다뤘는지는 묻지 않아도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값진 고발이고 누군가에겐 불편한 폭로이겠으나 그중 어떤 이라도 이 책이 현실 가운데 유의미한 지적과 질문을 쏟아내고 있음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는 말 그대로 검찰을 떠난 어느 법조인의 고백이다. 그저 자기고백에 그치지 않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심지어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지 모를 검찰의 과오를 낱낱이 드러내 까발린다. 한 건 한 건 중요치 않은 게 없는 문제를 한 권에 줄지어 꿰어놓으니 고스란히 검찰을 바로세울 이유가 된다.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를 하나씩 들여다보자.
김홍영 검사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검사가 있다. 남다른 배경을 믿어서인지 거듭 후배 검사들을 심각한 수준으로 추행한 검사도 있다. 어느 검사는 불성실한 태도를 일삼다 고소장을 분실하고 상급자 도장까지 몰래 찍어 위조했다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 측근과 유진기업에서 내사·수사 무마 청탁을 받고 차명계좌에 뇌물을 받은 검사, 한진그룹을 내사했다 뭉개고 처남 명의 청소용역업체에 매출 100억원대 거래를 몰아받은 검사,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 부당한 인사발령까지 낸 검사, 피의자와 검사실에서 성관계를 한 검사, 성형외과 프로포폴 사용을 수사하며 피의자들과 변호사인 매형을 연결해주고 매형을 선임한 의사를 기소유예 처리한 검사 등등등...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바 있는 김대현, 진동균, 윤혜령, 김광준, 진경준, 안태근, 전재몽, 박동인 검사의 사례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한국 검찰의 민낯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데, 조치가 제대로 된 건 얼마 없다. 해임된 김대현 검사도 속해 있던 서울남부지검이 감찰을 맡아 봐주기 의혹이 인 뒤에야 대검찰청이 직접 조사를 해서 해임 결정을 내놨다. 김 검사는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마저도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아 대한변호사협회가 강요, 모욕, 폭행 등의 혐의로 고발해야 했다. 1년 가까이 결론을 내지 않던 검찰은 지난해 11월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기소의견을 낸 뒤에야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싸는 방식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진동균 검사는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에도 형사처벌이나 징계조치 없이 검찰을 떠났다. 진 검사는 검찰 미투파문 이후 사건이 화제가 된 뒤에야 기소돼 재판 중이다. 당시 감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지휘라인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임은정 당시 북부지검 검사가 당시 검찰 내부 제보시스템으로 감찰과 수사를 수차례 요청했지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폭로했지만 검찰은 관련자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김홍영 검사 사망사건을 남부지검이 직접 조사할 당시 김진모 검사장과 조상철 차장검사는 진술서를 쓴 검사를 불러다 "이 새끼, 저 새끼가 무슨 욕이냐"며 "언론이 과장해서 떠드는데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했다고도 한다.
모두 책에 담긴 내용이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고작 1년 근무해서 뭘 아냐"는 당신, 거울을 보라
이쯤 되면 스스로 문제를 느끼고 자성할 법도 한데 검사들의 사고는 일반인과 많이도 다른 모양이다. 김웅 검사가 퇴임 후 낸 책에서 '내가 검찰에 들어온 뒤 이 조직은 늘 추문과 사고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일신하겠다는 발표를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깎을 뼈도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늘 죄인처럼 지냈지만, 추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부분의 검사들이 왜 싸잡아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는 글을 쓴 것을 두고 저자는 침묵한 죄와 행동하지 않는 죄를 가볍게 보는 검찰의 어긋난 인식을 지적한다.
'알고 지내는 아주 양심적인 검사가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가 99퍼센트의 사건은 공정하게 한다. 1퍼센트는 압력이 들어오거나 누가 청탁하거나 그러면 봐줄 수도 있는 거지." 아무리 양심적이라 해도 1퍼센트는 뭉갠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검찰에서는 이 정도면 정말 진실되고 솔직하다 할 수 있다. 그 말에 내가 "그건 99퍼센트 사건에 대해서도 압력이나 청탁이 있으면 다 말아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라고 공무원 신분 보장하고 월급 주는 게 아닐 텐데"라고 하니까 그가 입을 다물었다. -48p
책을 비난하는 이들은 이렇게들 말한다. 고작 1년 남짓 검사 생활한 사람이 뭘 안다고 검찰 이야기를 그렇게 해대느냐고, 제가 알고들은 이야기를 넘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짜깁기해 관심몰이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검찰 관계자들이 억울하게 매도된다는 게 이들에게 깔린 인식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 검찰개혁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럼에도 책은 희망을 말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임은정과 서지현, 진혜원과 박병규 검사를 언급하며 '핍박과 멸시와 고통을 견디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마무리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다름 아닌 피노체트 반군에 몰려 대통령궁에 갇힌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이야기다. 반군에 포위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옌데 정권의 종말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든 군부와의 격전설을 언급하며 최후의 최후까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동세력에 의해 포위된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은 실제로 몹시 감동적이다. 그는 곧 라디오도, 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도 자유와 인민, 사회변혁을 부르짖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칠레에선 영원할 것만 같았던 피노체트 헌법이 찢겨져 내려왔다. 잠들어 있던 칠레의 민중들이 거리로 나와 싸워 이룩한 결과다. 이들은 자유와 인민, 사회변혁을 부르짖으며 피노체트의 흔적을 씻어내고 아옌데가 가리킨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위대한 항해를 이제 막 시작한다.
그럼에 믿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의 민중들이 믿음을 잃지 않는 한, 고작 한 줌 썩은 곳을 도려내는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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