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외국인 노동자 숙소 정부 지침에 농민 반발 "탁상행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22 08:00

수정 2021.01.22 08:00

심각한 인력수급난 겪고 있는 농가
외국인 노동자 처우 개선에는 동의
현실적인 제도개선 선행 우선
"당장 2월까지 숙소 건축 어떡하나" 막막한 농민들
임대농들 "토지소유주에 건축물 양해 구하기도.."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경기도 포천에서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 숙소 관련 대책이 '탁상행정'이라며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1일부터 컨테이너 및 조립식 패널을 이용한 숙소를 외국인 노동자에 제공할 경우 고용을 불허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 인력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들은 "농촌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속을 끓이고 있다.

지난 9월 경남 남해군 고현면에서 한 농민이 장마·태풍에 쓰러진 벼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9월 경남 남해군 고현면에서 한 농민이 장마·태풍에 쓰러진 벼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농민 소득 빠듯한데‥건축비용 오롯이 부담"
22일 한국농축산연합회 등에 따르면 국내 농가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노동자들 70%가 입국하지 못해 인력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부족한 농장 일손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농산물 출하가격 상승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통상 농산물 출하가격이 오르면 농부의 수익도 올라야 정상이지만, 인건비로 메우다 보니 수입마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농가의 소득은 도시 근로자의 63%에 그친다. 지난 2019년 농가의 평균소득은 4118만원으로, 이는 전년대비 2.1% 감소한 수치라고 연합회는 주장했다.

업계 종사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숙소를 당장 2월까지 정부의 지원 없이 숙소를 짓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경남 밀양에서 지난 2017년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청년농업인 부부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실질적으로 경작이 어려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 수급은 늘 모자랐다"며 "컨테이너, 조립식 판넬이 아닌 숙소를 짓는 비용은 오롯이 농민이 부담해야 하는데 농민의 1년 수익과 건축 비용을 이해하고 건축행위를 권고하는 것인가"라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갑자기 오는 2월까지 기존 컨테이너, 조립식 판넬 숙소를 철거하고 인허가를 받은 숙소를 지으라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한국농축산연합회도 최근 성명을 통해 "경제적 여력이 없는 수많은 임대농들과 새롭게 농업에 진출한 청년농에게 신규 건축물을 설치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융자나 보전 등은 일언반구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고용노동부의 행태는 물론 이를 수수방관하는 농식품부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6일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 한 미나리꽝에서 작업자들이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6일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 한 미나리꽝에서 작업자들이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뉴스1

"농지법 상 건축물 규제 먼저 손봐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농가 가운데 토지를 임대해 영농을 이어가는 임차농가는 지난 2019년 기준 절반(51.4%)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임대농들이 토지 소유주에 외국인 숙소를 짓기 위해 건축물에 대한 양해를 얻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건축물을 짓더라도 현행법상 농업 이외 부대시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농지로 돌려놔야 하는 허점도 있다.

경기도에서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농부 A씨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농촌의 현실에 대해 무지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농지법에 의한 건축물 규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지에 존치기간이 3년인 불법 가설물을 설치하라는 식의 행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현행법 상 농지에는 바닥에 콘크리트를 타설 할 수 도 없고, 농지에 전기·수도 설치 요청 시 농사용 전기 말고 들어오지 않는다"며 "수도도 들어오지 못해 식수용 지하수를 개발해야 하고, 전기는 건축물로 인정받지 못해 가정용 전기도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숙소를 지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처사"라며 "현재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 숙소 정책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농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현재 농가의 현실이 외면된 채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소비자에는 농산물 가격 상승, 농가에는 불법노동자 양성이라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도 중요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나 환경이 문제가 된다면 기준을 정해 기존 합법적으로 지어진 가건축물 중 적합한 건물은 현실적으로 유예하고, 건축물을 지어야 할 경우에는 지을 수 있는 환경이나 인허가 문제 해결이 선행된 상태에서 유예기간을 거쳐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