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가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미얀마 '민주화의 꽃'이 된 건 아니다.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후 1988년까지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를 지탱한 실세는 군부였다. 영국에서 살다 28년 만에 귀국한 그는 1988년 8월 8일 대규모 민주화 항쟁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 일명 '8888 항쟁' 이후에도 군사통치는 이어졌다. 그는 1989~2010년 사이 15년간이나 군부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됐다.
그는 2015년 총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승리하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자녀 국적(영국) 문제로 직접 대통령이 되진 못했으나 국가고문(총리 격) 겸 외교장관으로 취임했다. 대외적으론 미얀마의 통치자로 비쳐졌다. 그러나 군 통수권과 국방·내무·국경경비 등 3개 부처 장관 임명권을 가진 군부의 질긴 권력의지가 재확인됐다.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상·하원 의석 25%는 선거 없이 자동으로 군부에 귀속되는 데도 최근 총선이 부정선거라며 쿠데타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는 선출직인 의회 권력과 막후 실세 권력인 군부의 '어색한 동거'의 씁쓸한 결말인지도 모르겠다. 수치는 그간 개헌으로 군부의 힘을 빼자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따르기보다 권력분점이란 타협 노선을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탄압한 군부의 편에 서기도 했다. 이 바람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그의 명예에도 금이 갔다.
인생 황혼기(75세)에 권력을 잃은 그가 재기할 수 있을까. 전망은 '잔뜩 흐림'이다. 구금 중 그는 미얀마인들에게 '쿠데타 거부'를 촉구했지만 '피플 파워'가 재현될 기미는 아직 없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마지막 희망이지만, 이마저 군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를 방임한 그의 원죄 탓에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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