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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장관이 공들인 첫 작품
공급 확대 의욕은 좋지만
시장은 공공주도에 물음표
文정부 임기 1년남짓 남아
서울 32만채 추진력에 의문
집주인 선뜻 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정부실패 가능성
공급 확대 의욕은 좋지만
시장은 공공주도에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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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32만채 추진력에 의문
집주인 선뜻 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정부실패 가능성
[파이낸셜뉴스] 국토부인가 건설사인가.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늘 어디에 언제까지 몇 채를 짓겠다는 식이다. 지난주 변창흠 장관이 첫 작품으로 '공공주도 3080플러스,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내놨다. 보도자료는 45쪽에 이른다. 17쪽짜리 일문일답은 별도다. 스스로 '획기적'이란 표현을 쓴 것도 이채롭다. 오는 2025년까지 서울 32만채를 비롯해 전국에 84만채를 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공기업이 공공 재건축을 주도한다. 배경부터 추진 일정까지 흠 잡을 데 없이 정교하다. 전임 김현미 장관 시절 대책도 수십쪽 분량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정교한 대책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까. 나는 그 원인을 정부실패에서 찾는다.
정부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나는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를 추앙하는 이들은 정부는 시장에서 빠지라고 말한다. 예전엔 이걸 야경국가론이라고 불렀다. 정부는 그저 밤에 등불을 켜고 도둑이나 잡으면 된다는 논리다. 21세기에 야경국가는 설 자리가 없다. 그랬다간 당장 정부는 도대체 뭘 하느냐고 여론이 들끓을 게 뻔하다. 종종 쪽방촌 고독사가 뉴스에 오른다. 여론은 일제히 정부를 때린다. 세금 걷어서 뭐했냐며.
그럼 도대체 정부는 개인의 일에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는 걸까. 나라마다 다르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는 사생활에 깊숙이 들어온다. 세금도 왕창 걷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학교에 보내고, 나이 들어 병원 갈 때 정부가 큰 역할을 한다. 그 반대편에 미국이 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라는 게 기본 철학이다. 한국은 미국식이 뿌리다. 하지만 유럽식으로 변이가 진행 중이다. 이 추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듯하다.
정부가 할 일, 해선 안 될 일
그러나 아무리 큰 정부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전기, 수도, 항만, 철도, 도로, 공항 같은 인프라는 정부가 하는 게 좋다. 아니, 해야 한다. 인프라는 이문은 작고 리스크는 크다. 철도 잘못 깔면 두고두고 손해다. 이런 일을 시장에 맡기면 아무도 안 한다. 반면 이문이 큰 사업, 시장에 맡겨도 잘 굴러갈 사업에선 정부가 손을 떼는 게 낫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사업에 공을 들인다. 영세 자영업자의 수수료 부담을 덜겠다는 명분은 근사하다. 하지만 제로페이 사업에 학점을 매기면 잘해야 D등급이다. 제로페이가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를 이길 걸로 보는 사람은 없다. 페이는 핀테크의 핵심 분야로 플랫폼 기업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이 시장에 지자체가 발을 들여놓은 게 애당초 잘못이다. 그런데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강행했다.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시장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곳이다. 서울시가 영세상인을 돕고 싶다면 시장에 직접 뛰어들 게 아니라 사후적으로 세금을 통해 복지로 해결하는 게 낫다. 그래야 시장도 살고 정부도 박수를 받는다.
부동산 시장은 어떨까
옛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토지 사유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땅은 공기처럼 개인 소유물이 될 수 없는 자원이었다. 그만큼 땅은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김현미 전 장관은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았는데, 이게 왜 비판 받을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김 전 장관의 고충을 이해한다. 휴대폰은 모든 이가 원하는 모델을 살 수 있다. 집은 그럴 수 없다. 땅과 같은 희소 자원을 무조건 시장에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일정 한도 안에서 정부 간섭이 불가피하다.
지난 수십년 간 한국은 거대한 부동산 정책 실험장이 됐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 시장을 100% 자율에 맡기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가 묘하다. 정부가 깊이 개입할수록 되레 집값이 더 올랐다. 노무현정부가 그랬고 문재인정부가 뒤를 잇는 중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집값이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보다 문·노 정부에서 더 올랐다고 주장한다. 적대시하면 부동산은 꼭 앙갚음을 한다.
숲을 보지 못하는 국토부
이쯤 되면 정책오류를 반성하고 기조를 바꾸는 게 순리다. 현실은 거꾸로다. 국토부는 마치 돌팔이 의사처럼 상처를 뒤집고 또 뒤집고 또 뒤집기만 한다. 그럴수록 상처만 덧난다는 걸 진정 모르는 걸까. 변창흠표 1호 정책은 문 정부 통산 25번째다. 이 추세라면 임기 내 30회도 가능해 보인다.
공공 재건축은 제로페이처럼 100% 관제는 아니지만 반관반민 혼합형이다. 이런 어정쩡한 정책이 과연 시장에서 먹힐까.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1년 남짓 남았다.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누구라도 먼저 내년 정권교체부터 지켜보겠다는 계산을 하지 않을까.
서울 32만채는 허수다. 민간 아파트 주인들이 외면하면 공공 재건축은 말짱 꽝이다. 경실련은 성명(2월4일)에서 "남은 임기 1년 남짓 단 한 채도 입주될 가능성이 없고, 10만 채도 착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공공이 주도하면 투기도 안 생기고 집값도 안 오를까? 경실련은 "서울 집값 더 오를 것"이라고 단언한다.
국토부는 아파트부가 아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아야 한다. 숲은 국토다. 그런데 국토부는 나무만 보느라 숲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같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부동산 정책이 수도권 비대화를 부른 주범 중 하나다.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며 서울을 빙 둘러 신도시를 세웠다. 결과는 수도권 바깥 인구를 끌어들였을 뿐이다. 수도권 내 거주를 원하는 수요는 늘 공급을 초과했다. 역설적으로 균형발전을 저해한 것은 국토부다. 전국 곳곳에 살 만한 곳이 들어섰다면 수도권에서 인구가 빠질 테고, 인구가 줄면 집값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국토부는 건설사가 아니다
민간 아파트 재건축에 끼어드는 건 국토부가 할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너무 쪼잔하다. 국토부의 본질이 아니다. 정부는 큰 틀에서 땅의 용도를 정하고 층고를 조절하는 일만 하면 된다. 마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듯이 말이다. 서민용 임대주택 확대는 정부가 존재감을 더 드러내도 좋은 분야다. 나아가 서울 강남뿐 아니라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전략을 짜는 게 정부 본연의 임무다. 정교한 부동산 대책 백날 짜봐야 방향이 틀리면 소용 없다. 과녁을 맞히기는커녕 종종 제 발등을 찍는 비극마저 벌어진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갈수록 제로페이를 닮아간다. 간섭은 불가피하지만 관제화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8일 "모든 걸 공공에서 다하겠다는 부동산 국가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며 "주거 복지는 공공에서, 재건축은 민간에서 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시장만능주의는 흔히 시장실패를 낳는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예 시장을 대체하려 들면 정부실패로 이어지기 일쑤다. 반(半)관제 공공 재건축이 또 하나의 정부실패 사례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다. 곰곰 따져보자. 정부가 공기업을 앞세워 민간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 발을 담그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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