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로 16개월 생을 마감한 '정인이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다. 하지만 그사이 벌써 10살 조카 폭행·물고문 살인 사건, 생후 2주 갓난아이 학대 사망 사건, 구미 빌라 여아 사망 사건 등 아동학대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2019년에만 아동학대로 숨진 아동이 무려 42명에 달한다. 극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각종 '특별대책'과 '종합대책'을 쏟아냈다. 만 3세 아동 전수조사를 하고, 즉각 분리제도를 도입하고,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개편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그때그때 단편적으로 내놓은 땜질 처방으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분리보호가 안돼서 사건이 발생하면 2회 이상 신고 시 즉시 분리하고, 입양아동 사망 사건이 생기면 아동학대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입양 제도를 손보고, 가해 부모의 처벌이 미흡한 것 같으면 처벌을 강화하는 사후대처 식 방식으로는 아동학대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아동학대 대응체계는 신고가 들어온 후에 가동하는 '신고기반 체계'다. 그래서 신고가 안된 아동학대 의심 사례에 대한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예방체계를 대폭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학대피해 아동의 연령 분포를 보면 만 0~2세 아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6.6%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한 '신고기반 체계'를 가진 미국의 경우는 같은 연령대 피해아동의 비중이 28.1%에 달한다. 미국은 영유아기의 피해율이 가장 높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가장 낮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유아기에는 학대가 거의 없다가 아동이 나이가 들면 학대가 시작된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우리나라의 영유아기 아동학대 신고율이 낮기 때문이다. 영유아기는 아동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자신이 의사표현을 할 수 없어 학대가 외부에 노출될 확률이 낮다. 그러다 보니 신고율 자체가 낮을 수밖에 없다. 영유아에 대한 아동학대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여러 국가에서는 아동학대 및 방임 예방을 위해 영유아가정방문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보통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한 조가 돼서 2~3개월마다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아동양육 지원, 부모교육, 아동학대·방임 위험도 스크리닝, 아동 건강검진 등의 조기개입 예방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해서 낙인감도 별로 없어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 등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사업의 효과성을 확인한 바 있다.
아동학대 예방체계를 대폭 강화하라는 요구에 듣는 대답은 매번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아동복지학'에 실린 한 논문에 의하면 전문적 서비스를 통해 재학대율을 50% 낮추게 되면 비용 대비 최소 17배, 최대 3322배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예방은 가장 투자 가치가 높은 미래에 대한 사회적 투자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아동학대의 비극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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