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세게 붙었다. 네이버, 카카오페이와 같은 빅테크 지급결제를 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9일 "한은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빅 브라더'라고 한 건 오해다. 조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조금'이라고 했지만 잔뜩 화가 난 것 같다. 은 위원장은 "금융결제원을 관장하는 한은이야말로 빅브라더"라고 역공했다.
앞서 한은은 17일 입장자료를 내고 윤관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에 대해 "지급결제 시스템을 소비자 감시에 동원하는 빅브라더법"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어 "관련 조항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날 정무위는 개정안을 상정됐다. 위원장은 다름아닌 윤 의원이다. 애매한 화법을 즐겨 쓰는 한은이 이처럼 강한 톤으로 반대의 뜻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은도 화가 났다는 뜻이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정무위 소관이다. 한은은 기획재정위 소관이다. 따라서 한은은 윤관석 의원안이 사실상 금융위안이라고 본다.
이주열 총재도 진작에 화력을 보탰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전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은의 영역을 건드리는 지급결제 청산업에 관한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위가 빅테크 내부 거래를 (금융결제원 시스템에) 집어넣으면서 금융결제원을 포괄적으로 감독하겠다는 것은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라고 했다. 한마디로 지급결제 청산이라는 한은의 고유 업무에 왜 금융위가 끼어드느냐는 것이다.
개정안을 보면 한은의 우려도 일리가 있다. 개정안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청산업을 하려는 자는 금융위의 승인, 허가를 받도록 했다. 청산기관에 대한 감독권도 금융위에 있다. 전자지급거래청산업무는 금융결제원이 맡을 게 확실히다. 중앙은행이 관장하는 금융결제원 업무에 금융위가 쑥 끼어드는 격이다. 한은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중앙은행과 금융당국 간 대립은 고질적이다. 금융위기 뒤 한은법을 손질할 때는 한은이 창을 들고 금융당국이 방패로 맞섰다. 금융사 검사권을 둘러싼 한은과 금감원의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다. 이번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위가 창을 들고 한은이 방패로 맞서는 격이다.
한은에 당부한다.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가 주도하는 디지털 금융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15년 전 제정된 전금법은 이미 낡았다. 은 위원장은 "개정안은 금융사고가 났을 때 이 돈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야 돌려줄 수 있으니 기록을 남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화통화를 하면 통화기록이 통신사에 남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금융 시대엔 빛의 속도로 큰 돈이 오간다. 금융 소비자 보호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소비자 보호만큼은 한은이 전금법 개정에 적극 협조하기 바란다.
금융위에 당부한다. 신설될 전자지급거래청산업에 대한 허가·승인·감독권을 꼭 금융위가 가져야 하는지 한번 더 고민하기 바란다. 한은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고유기능, 책임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일리 있다. 신설 청산업에 대한 허가·승인·감독권을 한은에 주되 금융위가 일정한 역할을 하는 식으로 법안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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