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서 이슈 등장
금태섭 성소수자 권리 옹호
다른 후보들은 엉거주춤
美선 진보·보수 가르는 잣대
바이든 대통령은 친LGBTQ
종교계등 보수는 결사반대
내년 대선에도 변수 예상
금태섭 성소수자 권리 옹호
다른 후보들은 엉거주춤
美선 진보·보수 가르는 잣대
바이든 대통령은 친LGBTQ
종교계등 보수는 결사반대
내년 대선에도 변수 예상
[파이낸셜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LGBTQ 이슈가 불거진 탓이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퀴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두고 후보들이 머리를 싸맸다.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에 따라 표가 확 갈릴 수 있어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에서 LGBTQ 이슈는 낙태와 함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다. 진보는 성소수자 권리를 넓히는 데 찬성한다. 보수는 결사 반대다. 국내에서도 성소수자가 선거 이슈로 불거질 공산이 크다. 후보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는 저만큼 앞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성소수자 인식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왼쪽 끝에 서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초 전세계에 걸쳐 LGBTQ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행정부에 지시했다. 바이든은 "모든 인간은 그들이 누구이든, 그들이 누구를 사랑하든 상관 없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바이든은 국무부에 대해 해외 인권 보고서를 작성할 때 반LGBTQ 폭력, 차별 등을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자칫 반인권국으로 찍힐 판이다. 바이든은 취임 후 100일 안에 소수자인권법(Equality Act)를 통과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그가 교통장관에 임명한 피트 부티지지는 미국 역사상 첫 게이 장관이다.
성 소수자의 군 복무는 정권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했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물꼬를 텄고,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정식으로 허용했다. 보수의 아이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뒤집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바이든은 다시 트럼프의 결정을 뒤집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한국은 이제 막 시작
고 박원순 시장은 LGBTQ 이슈에서 주요 정치인 중 가장 왼쪽에 섰다. 시장 재직시 서울광장 퀴어문화축제를 꾸준히 허용했다. 사실 성소수자들은 지난해 든든한 정치인 '백'을 잃었다. 박 전 시장은 명실상부한 진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중파다. 2017년 4월 대선 TV토론에서 당시 문 후보는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차별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동성애 합법화도 반대, 차별도 반대다. 인권변호사에 진보정당 출신이지만 교회를 비롯한 보수세력의 눈치를 봤다.
현재 서울시장 후보 중에선 금태섭 전 의원이 가장 진보적이다. 그는 "서울광장에서 퀴어 축제를 여는 것에 문제가 없고 시장이 직접 참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전 시장의 태도와 가장 가깝다. 금 전 의원은 과거 민주당에서 소신을 말하다 왕따 취급을 받았다. 그런 그가 성소수자 편에 선 건 당연하다.
나경원 후보(국민의힘)는 "성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불편해 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광장에서 퀴어 축제를 여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보수당 출신 후보답다.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퀴어 축제 장소는 도심 밖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소수자 차별에 누구보다 반대한다"고 덧붙였으나 모순적이다. 차별하지 않는다면 축제 장소를 변두리로 옮길 이유가 없다. 정의당은 "성소수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는 안철수 후보의 인권감수성이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박영선 후보(민주당)은 엉거주춤이다. "기본 원칙은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시대가 포용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 서울시민과 지혜를 모아보겠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에 훨씬 못 미친다. 같은 당 우상호 후보는 "시장이 된 뒤 최선의 대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나마나한 얘기다. 진보 민주당 후보들의 소극적인 처신에서 보듯 한국 사회는 여전히 LGBTQ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대중문화 속 성소수자
어느 나라든 대중문화가 성 소수자 이슈를 주도한다. 2005년 아카데미상 최우수감독상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연출한 이안(李安)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는 최우수작품상에 지명되기도 했다. 영화는 게이 카우보이의 삶을 다룬다.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양성애자로 묘사한다.
오래전 인기 작가 김수현의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극중 주인공급 인물이 게이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가족의 장남이었다. 공중파 주말 드라마로선 파격이었다. 그게 11년 전 일이다. 이 일로 김수현은 게이단체로부터 무지개 인권상을 받았다.
그보다 앞서 2000년에 연예인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세상에 공개했다. 2001년엔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나왔다. 하리수는 아직도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은 듯하다. 그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제발 부탁인데 2021년부터는 그냥 우리 서로 자기 인생을 살자"는 글을 올렸다.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차승원이 주연한 '하이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조폭을 때려잡는 강력계 형사가 밤만 되면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싶어진다. 이 부조화를 떨쳐버리려 더 센 척 하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본능을 떨쳐버릴 순 없다.
뮤지컬 '헤드윅'은 국내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수입 뮤지컬로 꼽힌다. 미국으로 가려고 성 전환 수술을 받는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의 삶을 그렸다. 여자가 됐지만 헤드윅을 기다리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경계인으로서의 삶이다. 조승우, 오만석, 조정석, 엄기준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하나같이 '헤드윅'을 거쳤다.
'헤드윅'의 대표곡 '사랑의 기원(Origin of love)'은 원초적 인간을 남녀 한 몸, 남남 한 몸, 여여 한 몸, 이렇게 셋으로 그린다. 이걸 제우스 신이 벼락을 내리쳐 각각 반으로 가른다. 인간이 제 힘을 믿고 교만을 부렸기 때문이다. 이때 남남이었던 사람이 나중에 게이, 여여는 레즈비언이 된다는 논리였던 것 같다.
종교계는 결사반대
종교계는 펄쩍 뛴다. 신은 남자와 여자를 따로 창조했다. 동성애는 명백히 신의 뜻에 어긋난다. 종교인들은 퀴어퍼레이드가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맞은 편에서 반대 시위를 벌인다.
기독교계는 내부 단속도 한창이다. 2019년 인천 퀴어축제에서 성소수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한 이동환 목사는 교회 재판에서 2년 정직 처분을 받았다. 허호익 목사(전 대전신학대 교수)는 지난해 여름 교단으로부터 면직 및 출교 처분을 받았다. 교적을 삭제하고 교회 밖으로 내쫓는 출교는 가장 센 처벌이다. 허 목사는 2019년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책을 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지난해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동성결합에 대해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며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교황청은 곧바로 이것이 동성애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많은 이들이 LGBTQ를 불편하게 보는 건 사실이다. 198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 곧 에이즈가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때 '비도덕적인 성행위'가 에이즈 감염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종교계 등 보수세력은 이를 즉각 신의 응징으로 해석했다.
미국 여론조사 업체인 퓨 리서치센터는 1987년 "에이즈는 비도덕적 성행위(Immoral Sexual Behavior)에 대한 신의 응징(Punishment)일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동의한다는 답이 43%,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이 47%로 나왔다. 백인 기독교 신자층에선 60%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 대해 20년 뒤인 2007년엔 동의한다가 23%에 그친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가 72%로 높아졌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이 가능할까
우리 사회가 LGBTQ를 대하는 수준은 커밍아웃한 젊은 작가 김봉곤이 대표작 '그런 생활'에서 아주 잘 그렸다. 김봉곤이 2020년 젊은작가상을 받았다가 반납한, 문제의 그 작품이다(지인과 사적으로 나눈 카톡 대화를 그대로 소설에 인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아래는 엄마가 게이 아들한테 전화를 해서 나눈 대화다.
"니 진짜로 그애랑 그런 생활을 했나?"
사뭇 비장한 말투 그리고 '그런 생활'이라고 돌려 말하는 게 웃겨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쩌면 조금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활이 무슨 생활인데? 하이고, 그래도 책을 읽긴 읽었는갑네."
"진짜로 그런 생활을 했냐고 묻잖아."
"응, 했지. 그애랑 살았고 그런 사이였지."
"엄마야, 미쳤다…"
그러고는 나도 엄마도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 니 그러면 아직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나?"
"어, 그런 생활이 뭔진 모르겠지만 엄마가 돌려서 말하고 있는 그거 맞다."
"엄마야 미쳤는갑다. 엄마야 머리야."
"엄마, 근데 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고, 일시적인 거 아니니까 앞으로도 괜한 기대는 하지 말고."
"알았다. 미쳤다. 아이고 머리야."
남의 자식이 성소수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사뭇 관용을 베풀던 이들도 제 자식이 성소수자라면 놀라서 뒤로 자빠지는 게 현실이다. 작년 6월 정의당 장혜영·심상정 의원 등 10명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자 보수단체가 경기도 고양에 있는 심상정 의원 사무실에 몰려가 소란을 피웠다.
당분간은 잦은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옛날처럼 "예끼, 이놈들" 한다고 성소수자 문제가 사라지는 단계는 지났다는 점이다. 쉬쉬 하느니 차라리 성소수자 이슈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음지로 쫓아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서울시장 출마자들이 아주 큰 숙제를 안았다. 내년 대선 출마를 꿈꾸는 이들은 미리미리 숙제를 풀어놓길 권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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