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목공예 명인 최덕수(62)씨 삶 조명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나무는 어디에나 뿌리 내려 최선을 다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나무는 다 준다
400여점 작품 수령 합치면 만년은 될 것
작품 전시해 많은 사람과 공유 했으면 해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나무는 어디에나 뿌리 내려 최선을 다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나무는 다 준다
400여점 작품 수령 합치면 만년은 될 것
작품 전시해 많은 사람과 공유 했으면 해
【파이낸셜뉴스 전주=김도우 기자】 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물러나고 서서히 봄 마중을 해야 할 때다. 경칩도 코앞이다. 한편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시간을 붙들어 매놓고 싶다. 봄기운을 느끼고 싶을 때 천년된 나무를 보면 마음 차분해진다는 말에 달려갔다. 선 채로 천년을 살았던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 궁금했다.
국내 10명도 채 안 되는 초대형 목공예 명인 가운데 한 명인 최덕수(62·사진)씨는 지난 2월 말께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50년 나무하고 살았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나무를 만날 것”이라며 “좋아하기 때문에 하지 업(業)으로는 못 한다”고 말했다.
한 순간도 휴식하지 못하고 끝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최 명인은 나무를 얻은 대신 많은 것을 잃었다. 50여년 초대형 목공예만 매달린 결과, 식솔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역할은 소홀해졌고 가정도 친구도 떠났다.
가정은 올해 재결합을 꿈꾸고 있고, 이제 친구도 간혹 만난다. 이젠 넉넉하지 못한 호주머니 사정만 나아지면 된다.
대형 공예를 만드는데 나무의 선택과 가공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수령이 길게는 약 1500년부터 300~500년 사이를 좋은 나무로 친다. 나이에 따라 어린나무, 젊은 나무, 늙어 죽는 나무가 있는데, 마지막 고사목이 가장 좋다고 한다. 세월의 깊이가 명품 여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 최 명장, 다시 태어나도.."나무 만날 것"
전북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가 고향인 최 명장은 어려서부터 나무를 접했다.
초등학교 당시 팽이와 썰매, 나무지게를 만들어 팔았으니 동네에서는 이미 ‘나무 쟁이’로 소문나 있었다. 그때부터 환갑지난 지금까지 나무하고 살았으니 족히 50년은 된다.
최 명인은 “1000년 이상 된 고목 작업은 2년 넘게 한 적도 있다”며 “일본인들은 금목이라고 하는 느티나무를 선호한다. 수령과 재질이 좋고 용무늬가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이다 보니 계절에 따라 나무 무늬가 달라진다.
나침반이 없으면 나무 가지를 보고 판단하는 것처럼 나무 무늬 곁이 더 이쁘고 더 세련된 것 같다. 바람과 온도, 세월이 만들어낸 자연 작품이 나무 무늬다. 여기에 덧칠을 하고 보기 좋게 손질하는 것이 최 명인이 하는 일이다.
60여 년 내 인생 나무에 나이테가 그어진 과정을 회상해 봤다. 50년의 세월 동안 나무와 함께 한 최 장인의 삶이 그렇듯이 나이테 하나는 수많은 경험과 시간을 거쳐 어렵게 그어진다. 그런 인내심으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기르는 것이 소명이라 했다.
■ 좋은 나무·공예 만나는 건 좋은 배필만큼 어려운 일
최 명인은 서울종합예술공모전에서 목공예 부문 ‘꽃 조각’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걸 계기로 ‘초대작가’라는 칭호도 얻었다.
최 명인은 목공예 가운데 소형작품보다 주로 대형 목공예 작품 활동의 국내 권위자다.
그의 주 작업장은 전주 2곳, 완주군에 1곳이 있다. 대형 나무를 수공예 하다 보니 작업장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지금은 작업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초대형 목공예 작품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주재료도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된 고사목을 구입, 최 명인 손을 거쳐 명품으로 재탄생 되는 것이다.
최 명인은 “수령이 오래된 국내산 느티나무 고사목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나무의 무늬와 뿌리 모양이 좋아 서각이나 반입체조각시 그 자체로 시각적 효과가 매우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입비도 수천만원이지만 운반비도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초대형 목공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주 견실한 구조로 짜여 있으며, 그 짜임과 이음의 기법은 매우 치밀하다”며 “전통 목공예의 아름다움을 살리려면 나무 본연 결의 아름다움을 활용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러나 좋은 나무와 공예가 만나는 건 좋은 배필을 만나는 일만큼 어렵다”고 했다.
■ 초대형 목공예 부문 명장 반열에 오르다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작업 활동을 해 온 최 명인은 친구 권유로 서울종합예술대전에 작품을 전시, 10여 차례 수상하면서 이제 전국적으로 초대형 목공예 부문 ‘명장’ 반열에 올랐다.
그야 말로 하나의 대형 목공예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품구상과 밤낮 없는 손질과 옻칠 작업이 병행된다.
최 명인은 작품에 대한 열정은 그의 손가락 마디를 보면 알 수 있다. 성한 손가락이 없을 정도로 인고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최 명인은 “이제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 작업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안타깝다”며 “장소만 제공된다면 수십년 공들인 제 작품 400여점을 내놓을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사정이 어렵다보니 고목을 손질해 테이블, 식탁, 옷걸이 등 생활용품도 제작, 판매한다. 정성 담긴 것은 대형이나 소형이나 마찬가지다.
대형 목공예 장인은 완벽하게 짜 맞춤하는 손을 50년 이상 갈고 닦았다.
장인의 솜씨를 글이나 책으로 전수할 수 없는 노릇. 시간이 기억하고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기억해야 비로소 장인정신이 담긴 명품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 1000년 된 고목 앞에서 나이 따지는 건 우습죠
최 명인이 보여준 1000년 된 고목은 3개다. 그 몸통은 울퉁불퉁 옹이가 졌고 가지는 구불구불하여 멀찍이서 바라보면 가파른 산등성이나 성난 파도와도 같지만 바짝 다가가서 보면 둥그스럼한 큰 집채와도 같았다.
1000년 된 고목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숙연해진다.
최 명인은 “1000년 묵은 나무 표정, 본 적 있어요”라며 “천년을 지킨 나무는 줄기가 길어 몸통보다 곱절로 뻗어서 사방에 드리워도 잘라낼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그 나무는) 기둥으로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부서지고 갈라지고 했을 것이다. 조물주가 이 나무에게는 사람이 기교를 보태주게 하여 온전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무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린다. 최선을 다해 사는 거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에게 아낌없이 준다. 그래서 나무를 차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964425@fnnews.com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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