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백은 문예지 '현대문학' 3월호에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마음이 통하는 벗이었다"며 "소중한 벗을 잃었고 한 시대를 열었던 철인은 떠났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 화백은 생전에 이 회장이 "뛰어난 예술작품은 대할 때마다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유는 뭐죠", "예술가에겐 비약하거나 섬광이 스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계기가 되나요" 같은 질문을 했었다고 회고했다. 이 화백은 "이러한 질문 자체가 날카로운 안력(眼力)과 미지에 도전하는 높은 의지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 회장과 있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아직 회장이 되기 전 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벽에 걸린 완당 김정희의 글씨의 기백에 압도돼 "이 글씨에서 뭔가 느껴지지 않나요"라고 묻자 이 회장은 "으스스하고 섬찟한 바람이 불지만 이 정도는 좋은 자극이라 생각해서"라고 대답했다. 이에 이 화백은 "미술관 같은 곳에나 어울리고 몸에 좋지 않으니 방에서 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이 회장이 곧바로 떼었다는 것을 이후에 알았다고 했다.
예술품에 대한 이 회장의 안목에 대해서는 "선대인 이병철 회장의 영향이 크겠지만 아버지와는 다른 스케일과 감식안과 활용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특히 한국의 고(古)도자기 컬렉션을 향한 정열에는 상상을 초월한 에로스가 느껴진다"고 썼다.
이어 이 화백은 "이 회장이 국내외의 문화예술계에 이루어낸 업적과 역할은 헤어릴 수 없다"며 "특히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기메미술관 등 주요 박물관·미술관 한국 섹션 개설이나 확장은 음으로 양으로 이 회장의 의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화백은 "삼성문화재단의 이름하에 이 회장이 국내외의 문화예술계에 이루어낸 업적과 역할은 헤아릴 수 없다. 미술 분야만으로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벤트나 원조로 미술계를 고무하고 북돋아 줬다"며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만감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 어느 한 존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크기를 깨닫는 것이 세상의 상례로 경제계, 과학기술계, 스포츠계는 물론 문화예술계는 최상의 이해자, 강력한 추진자, 위대한 동반자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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