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투기' 여론재판 흘러
잘잘못을 엄중히 가리되
당사자 얘기도 들어봐야
잘잘못을 엄중히 가리되
당사자 얘기도 들어봐야
한국에서 부동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공직자가 병역, 대입, 채용 비리에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집·땅 갖고 장난 치면 공분을 산다. 공기업은 공(公)기업이다. LH 직원은 공직자에 준하는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추는 게 마땅하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구설에 올랐다. LH 직원을 애써 변명하려다 되레 혹을 붙였다. 변 장관은 MBC와 인터뷰에서 "개발 정보를 알고 토지를 미리 구입했다기보다는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걸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면 수용되는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며 땅을 잘 아는 LH 직원들이 "자기 이름 걸고 이번 바보짓은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변 장관이 투기를 옹호한다는 둥,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둥 비난이 쏟아졌다. 땅 매입은 변 장관이 LH 사장일 때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직을 두둔하는 듯한 언동을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결국 변 장관은 "제 불찰"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변 장관은 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따지고 보면 불법적이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 장관을 두둔할 마음은 없다. 단지 궁금하다. 왜 변 장관은 애써 LH 직원들의 행위를 해명하려 한 걸까. 단순히 면피용인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뭐가 있는가.
나는 변 장관에게 설명 기회를 주는 게 옳다고 믿는다. 판단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땅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들에게도 해명 기회를 주는 게 옳다. 지금 이들은 찍소리 못하고 죽일 놈이 됐다. 당사자의 말도 들어보지 않고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건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감정이 앞서는 여론재판은 간혹 뜻밖의 피해를 낳는다. 1898년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는 공개서한을 신문에 실었다. 졸라는 당시 간첩 혐의를 받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구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는 반유대, 반독일 정서가 팽배했다. 마침 드레퓌스는 유대인이고 독일계였다. 간첩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나중에 진범이 잡히고 드레퓌스는 무죄로 풀려난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여론재판의 무모함을 일깨웠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내라고 하자 일부에서 반발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조사 범위를 국토부·LH 전 직원도 모자라 배우자, 자녀, 부모까지 넓힌 것은 과유불급이다. 그보다는 범위를 좁혀 검찰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셀프조사로 인한 부실 논란이 사그라든다.
검찰 수사 결과 땅을 산 LH 직원의 잘못이 드러나면 일벌백계가 당연하다. 하지만 얘길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매부터 드는 건 여론재판이고 낡은 방식이다. 21세기에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식의 원님 재판은 어울리지 않는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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