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회식!' "저는 절대로 회식을 거절 못하는 여자예요. 한번 거절하면 다시 불러주지 않으니까요. 행운과 만날 기회도 줄어듭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장남이 다니는 회사로부터 7만4023엔(77만원)짜리 초호화 식사 접대를 받은 사실이 발각돼 사임한 야마다 마키코 내각 관방 공보관(60·청와대 대변인 격)이 지난해 6월에 한 강연 내용이다. 청자는 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이었다.
앞의 2개는 인터넷 사회, 뉴노멀 등에 대비하라는 뻔한 얘기였고 마지막 '회식' 대목이 백미였다. 철저한 남성 중심 일본 공직사회에서 '성공한 언니'로서 주는 그 나름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고 보인다. 강연 9개월 만에 이 처세에 발목이 잡혀 좌초했으나 일본사회의 공기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를 던져줬다고 본다.
야마다 공보관은 '여성 최초의 총리 비서관' '총무성 최초의 여성 국장'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남성 중심 공직사회의 '네마와시'(물밑교섭) 과정에 끼는 게 수월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정보가 읽히고, 인맥이 얽히는 비공식 회식 자리야말로 절대 빠져서는 안될 자리라는 것이다. 20대 일본 대학생들에게 주는 매우 현실적 조언이었던 것이다.
"여성이 많으면 회의가 길어진다.(그러니까 더 이상 여성을 더 참여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여기 계신 여성 이사 일곱분들은 '분별'이 있으시니까(입다물고 있어서 다행이다)."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의 여성멸시 발언, 그 행간의 의미를 풀면 이렇다. '분별있는 여성'은 적당히 알아서 입다물고, 남성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는 여성들을 의미한다. '회식을 거절하지 못하는 여성'은 더욱 가열차게 순응한 결과물일지 모른다.
4~5년 전, 한국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주제는 후배 여성 직장인들에게 주는 조언이었다. "저녁 모임에 불러주면 기회비용 따지지 말고 참석하세요. 여자들은 당장 득이 되는지 따져보고, 별것 없다고 생각하면 안 가는데 그러지 말고 어울리세요." '회식을 거절하지 못하는 여자'는 어찌 보면 한국이나 일본, 소수의 성공한 언니들이 터득한 공통의 처세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자들 '담배토크'(담배 피우면서 하는 막간의 '진솔한' 대화)에 낄 자신이 없고, 하룻밤 만에 거래처 사람이 "형님"이 되는 상황을 당해낼 재간이 없으면 저녁 밥자리, 술자리는 현실적 차선책이다. 성별격차지수 전 세계 153개국 중 121위(일본)와 108위(한국)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공식보다는 비공식 절차를, 실력보다는 연줄과 지연을 중시하는 구조, 다른 말로는 네트워크(인맥)에 취약한 그녀들이 터득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유리천장 언저리에 붙어있는 그녀들은 우리 사회의 소수다. 불행하게도 상당수 사람들은 그들의 '유난맞은' 방식을 결코 공감하지 못한다. 비극적 현실 앞에 가로놓인 것이다. "왜 회식을 거절하지 못하느냐." 구닥다리 방식을 향한 돌팔매질이, 구닥다리 현실에도 가해지길 기대해 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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