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비종교인 양심적 병역거부 첫 인정··· "누군 좋아서 가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14 12:25

수정 2021.03.14 12:25

대법원, 비종교 병역거부 첫 인정
훈련 대신 교도소서 대체복무 허용
종교인 무죄판결 사례도 거듭 나와
"병역의 의무 우선돼야" 비판도 있어
[파이낸셜뉴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가 처음으로 인정되며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법원은 최근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들에게 일괄해 징역형을 선고하던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한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받는 사례도 급감하는 추세에 있다.

법원은 2018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무죄 취지로 판단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사진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다스려온 법체계를 비판하는 퍼포먼스. fnDB
법원은 2018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무죄 취지로 판단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사진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다스려온 법체계를 비판하는 퍼포먼스. fnDB

■'의무보다는 신념' 법원 잇따른 무죄 판결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유죄판결을 파기해 다시 심리하도록 하는 법원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가 최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2016년 10월 현역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대하지 않은 A씨는 병역법에 따라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강제징집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수 남성이 병역의 의무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국방과 병역의 의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2심 재판부 결정에 흠결이 있다고 봤다. A씨의 양심이 진정한 것인지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8년 여호와의 증인 신도 B씨의 병역거부 사건에서 양심이 진정한 것인지를 심리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한 사실만으로 유죄를 선고한 게 잘못이라는 판단을 한 바 있다. 해당 결정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상태다.

최근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에게도 무죄판결을 한 사례가 나와 눈길을 끈다. 2013년 2월 전역 뒤 예비군에 단 한 차례도 참가하지 않은 C씨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비 종교인 가운데 첫 사례다.

재판과정에서 C씨는 가정폭력에 노출되며 성장한 경험으로 폭력에 경각심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미군의 민간인 학살 영상 등을 본 뒤 경각심이 살인을 거부하는 신념으로 커졌고 예비군 참가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C씨가 1인칭 슈팅게임에서 총기로 상대방을 죽이는 상황을 체험한 전력이 있다며 신념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씨는 교도소에서 3박4일간 합숙복무로 예비군을 대체하게 됐다.

법원의 잇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에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fnDB
법원의 잇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에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fnDB

■"좋아서 군대가나" vs "다양성 보장"
비종교인의 신념까지도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으로 인정되자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교회에 나간 기간으로 인증이 가능한 종교인과 달리 단순 신념만으로 병역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종전이 선언되지 않은 분단국가로 남성들을 징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역과 군사훈련을 특정인에게만 면제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최근 전역한 김모씨(28)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훈련을 받는 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함”이라며 “좋아서 훈련을 받는 게 아니라 비상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복무하는 건데 옆에서 자기는 양심상 못한다고 하는 걸 허용해주는 걸 보면 힘이 빠진다”고 비판했다.


반면 직장인 최모씨(38)는 “병역거부자라고 해서 아예 면제가 되는 게 아니라 시설이나 교도소 같은 곳에서 병역을 대체하는 걸로 안다”며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에도 개인의 자유를 이 정도까지 보장해주고 있다는 게 한국이 발전했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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