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록은 깨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장효조(당시 31살)는 1987년 타율 0.387을 기록했다. 2위 이만수(0.344)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프로 원년 백인천(0.412)이 유일한 4할을 찍었지만 이는 신계(神界)에 속했다.
인간계에선 0.387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 기록은 7년 후 이종범(0.393)에 의해 무너졌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타자들은 대략 30세 전후로 전성기를 맞는다. 20대엔 몸이 빠르게 반응하지만 변화구에 잘 속기도 한다. 서른 즈음엔 반응도 살아 있고, 다양한 타석 경험이 뇌 한 부문에 축척되어 있다. 실제 31살의 장효조는 타자로서 정점에 이른 듯 보였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살아오면서 지금 타격감이 가장 좋습니까?” 그의 대답은 “아니”였다. “그럼 언제?”라고 물으니 “10년 전”이라고 답했다. 10년 전이면 대학 시절이다. “당시엔 어땠나?”
들려준 답은 놀라웠다. 당시 공식 경기 사용 구에는 ‘대한 야구협회 공인구’라는 검지 손톱만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장효조는 투수의 공을 때리면서 그 도장을 봤다고 증언했다.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야구공의 실밥을 보고 타격했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날아오는 공에 찍힌 도장을 보다니! 그게 가능한 얘기인가. 이후 야구 좀 한다는 타자 여럿에게 물어 보았지만 누구도 실밥이나 도장을 보았다는 선수는 없었다. 굳이 장효조를 기억 속에서 소환해낸 이유는 추신수(39·SSG) 때문이다.
추신수는 한국으로 치면 마흔의 적지 않은 나이에 국내 야구로 복귀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서도 올스타에 뽑힐 만큼 대단한 선수다. 만약 추신수가 올 시즌 MVP를 차지한다면 역대 최고령이다.
이 부문 기록 보유자는 장효조다. 30대에 MVP를 품에 안은 국내 타자는 장효조와 김재환(당시 30살·두산) 둘 뿐이다. 투수를 포함한 역대 최고령 MVP는 다니엘 리오스(2007년)와 더스틴 니퍼트(2016년)로 당시 35세였다.
추신수는 오는 20일 창원에서 열리는 NC와의 시범경기에 첫 출전할 예정이다. 그의 기량이야 굳이 확인할 필요 없겠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20일 창원야구장은 들뜬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역대 어느 타자가 이런 분위기를 연출해냈을까.
추신수의 등장은 2012년 한화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박찬호는 일본 프로야구를 거치며 전성기를 넘긴 상태였다. 메이저리그서 따끈따끈한 모습으로 직수입된 추신수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추신수는 지난 13일 국내에 들어 온 후 처음으로 배트를 잡았다. 비록 연습이었지만 좌우 펜스를 넘기는 타구를 펑펑 날려 보냈다. 16년 메이저리거의 위용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SSG는 추신수의 앞뒤로 최주환, 로맥, 최정 등 강타자들을 포진시켜 두고 있다. 추신수 한 명에 집중하기도 힘든데 여럿을 상대해야 하니 상대 투수들에겐 큰 부담이다. 3할-30홈런-100타점을 예상해 본다. 39살의 추신수가 MVP를 차지한다면 대사건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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