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홍장표 교수님, 설마 아니시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9 18:52

수정 2021.03.29 21:47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차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뉴스1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차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홍장표 교수님.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을 그만 두셨으니 교수님으로 부르는 게 맞겠죠? 한동안 언론에서 사라진 교수님 이름을 최근에 다시 봅니다. 기사를 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차기 원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고 하네요. 아래 제 의견을 몇 자 적습니다.

KDI 원장으로 가는 로드맵은 착착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작년 12월 특위 위원장에서 물러나신 건,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지요? 바로 얼마전 상급기관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신임 원장 후보를 3명으로 추렸습니다. 이제 4월 이사회 의결을 거쳐 경사연 이사장이 임명하는 절차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이 마침 정해구 전 정책기획위 위원장이시네요. 경제수석으로 계실 때 손발을 맞춘 분이시죠? 현 최정표 원장은 이미 임기(3월28일)가 끝났구요. 이런 걸 두고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하나 봅니다.

교수님이 쓰신 논문을 다시 들춰봅니다. 책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2016)에 실린 '소득주도성장과 산업 생태계 혁신'이라는 논문입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교수님의 열정이 담긴 글입니다. 거기 이런 대목이 보입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있는 파이를 나누어 쓰자는 단순한 분배전략과는 달리 소득불평등을 완화시켜 내수시장을 늘림으로써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자는 성장전략의 일종이다."

소득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입니다. 다만 치유법으로 제시한 소주성 전략이 과연 올바른 처방이냐에 대해선 정통 경제학자들과 의견이 갈립니다. 불행히도 소주성 실험은 실패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대통령도 민주당도 더이상 소주성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증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주성의 아버지'와 같은 교수님이 KDI 원장으로 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환영 현수막이 걸리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그 전에 교수님이 보은 낙하산을 스스로 걷어차길 권합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1. KDI는 포스트(후기) 케인스학파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국가대표급 싱크탱크 KDI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KDI는 고도성장시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입니다. 400여명 연구원 대부분은 정통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입니다. 반면 소주성은 세계 경제학계에서 소수파인 후기 케인스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이론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와도 연관이 깊죠.

2018년 여름 최저임금 보고서 소동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KDI 선임연구위원 한 분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냈어요.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게 결론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주성 전략의 핵심이죠. 그런데 국책 KDI가 바로 여기에 제동을 건 겁니다. 만약 원장으로 가시면 부하 연구원하고 다툴 일이 많을 겁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3월 10일 개원 50주년을 맞아 비대면으로 기념식을 개최했다. (KDI 제공) /사진=뉴시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3월 10일 개원 50주년을 맞아 비대면으로 기념식을 개최했다. (KDI 제공) /사진=뉴시스

2. '홍장표 원장'이 정착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콧대 센 KDI 박사들이 '홍장표 원장'을 깍듯이 모실지도 의문입니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KDI 수석이코노미스트(2013~2015년)를 지낸 'KDI맨'입니다. 그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서 "이번 인사가 정말로 진행된다면 이는 사실상 KDI의 해체, 사망선고"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를 망친 제1의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점은 이제 일반 국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열을 뿜었어요.

KDI 원로들도 들고일어났네요. 최광 전 교수 등 19명은 29일 공동성명을 내고 "문제의 인사는 전대미문의 정책으로 경제를 파괴하고 민생을 질곡에 빠뜨린, 경제 원론적 통찰력도 부족한 인사"라며 "망국적 경제정책 설계자가 KDI 수장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어요. 원로들이 한 말이 맞나 싶을 만큼 험한 단어들이 난무하네요. '홍장표 원장'을 보는 KDI 내 기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3. 임기말 낙하산은 오명입니다

실패로 끝난 소주성 실험은 학자로선 큰 타격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오히려 현장 실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새롭게 다듬을 기회를 얻었어요. 패자부활전은 누구한테나 열려 있으니까요.

그러나 공공기관 낙하산, 그것도 임기말 낙하산은 패자부활전이 없습니다. 뭘 해도 그냥 낙하산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소주성에 대한 교수님의 순수성도 오염될까 걱정입니다. KDI 원장 해봤자 3년입니다. 차라리 대학 교수로 소주성에 재도전하는 모습이 훨씬 멋져 보입니다.

경사연은 차기 KDI 원장 후보로 3배수를 추렸어요. 홍 교수님 외에 두 분은 KDI 출신입니다.
둘 중 누가 돼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무슨 일이든 물 흐르듯 순리대로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홍 교수님의 아름다운 양보를 기대합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홍장표 교수님, 설마 아니시죠?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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