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정치가 부동산을 망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31 09:56

수정 2021.03.31 16:18

김상조 퇴진은 자충수
4·7 보선도 온통 부동산 
정치가 세게 건드릴수록
부동산은 괴물로 변해
시장을 놔주는 게 해법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9일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퇴임 인사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9일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퇴임 인사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59)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14%나 올려받은 게 사달이 났네요. 그것도 지난해 7월 말 전월세 상한제가 실시되기 이틀 전에 그랬다고 합니다. 손가락질 받을 만합니다. 정책실장이 어떤 자리입니까? 당·정·청 고위급 회담의 고정 멤버입니다. 부동산 정책에도 큰 책임이 있어요. 전월세 상한제도 예외가 아니죠.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오해를 살 만한 일을 했어요.

"다주택자는 집 팔아라" 코미디

그런데 가만, 정책실장 타이틀을 뗀 개인 김상조는 과연 뭘 잘못한 걸까요? 그는 임대인이면서 동시에 임차인입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자기집은 세를 주었고, 성동구 금호동에 세들어 살고 있습니다. 그는 금호동 전셋값이 오르자 청담동 전세값을 따라 올렸습니다. 임차인을 상대로 갑질을 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청담동 전셋값은 같은 평수대 주변 아파트보다 3억원가량 싸다고 합니다.

내가 김 전 실장이라면 어땠을까요? "나는 고위 공직자다. 그러니 금호동 전셋값이 팍팍 올라도 청담동 전셋값은 상한제 취지에 맞게 5%만 올리자"고 했을까요? 그럴 리가요. 상한제 실시하기 전에 잽싸게 청담동 전셋값을 올리는 게 만인의 상식입니다.

김 전 실장에 앞서 김조원 전 정무수석, 노영민 전 비서실장도 집 때문에 곤욕을 치렀습니다. 서울 강남에 두 채를 가진 김 전 수석은 끝내 직을 버리고 집을 사수했습니다. 노 전 실장은 솔선수범한다고 충북 청주집과 서울 반포집을 싹 팔아버리는 통에 졸지에 무주택자가 됐습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전세값은 되레 올라

왜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걸까요? 전월세값 상승에 브레이크를 걸어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한다는 숭고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처에 규제 그물을 쳤어요. 그 그물에 자기 편까지 걸린 겁니다. 자충수죠. 그럼 실제 시장에서 전셋값은 잡혔나요?

천만에요. KB국민은행이 매월 발표하는 주택동향 보고서를 보세요. 3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6억원을 처음 돌파했어요. 전셋값은 2014년에 3억원, 2016년에 4억원, 2020년(8월)에 5억원을 넘어섰습니다. 그 뒤 5억원에서 6억원으로 뛰는 데 불과 7개월밖에 안 걸렸어요. 친서민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제가 되레 역효과만 낸 꼴이죠. 부동산 시장은 때릴수록 덩치가 커지는 괴물이 됐어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5분 연설을 기억하시나요? 작년 7월30일 윤 의원은 전월세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법에 대해 "우리나라의 전세 역사와 부동산 정책의 역사와 민생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래 기억될 거라는 예언, 불행히도 맞을 것 같아요.

자료=경실련.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 서울아파트 시세 변화 분석'(2020년7월21일)
자료=경실련.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 서울아파트 시세 변화 분석'(2020년7월21일)


산불을 끄지 않는 지혜

규제를 함부로 쓰면 종종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사례가 한 둘이 아닙니다만 부동산 규제의 역설이 단연 돋보입니다. 역대 정권 중에서 진보 노무현·문재인정부가 부동산과 제일 세게 붙었습니다. 집값을 잡겠다고 조자룡 헌 칼 쓰듯 칼을 휘둘렀지요. 그런데 그럴수록 집값은 더 올랐어요. 지난해 7월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서울 아파트 25평형을 기준으로 정권별 집값 상승률을 따져보니 노·문 정부가 보수 이명박·박근혜정부를 압도했어요.

최성락 교수(동양미래대)는 '규제의 역설'(2020년)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합니다. 영국 런던의 쇼핑거리인 켄싱턴 하이스트리트에서 교통표지판을 확 치웠더니 "보행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비율이 60%나 감소했다"는 겁니다.

같은 책에서 저는 미국의 산불정책 'Let it burn'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담배불처럼 사람 때문에 생긴 산불은 즉시 끕니다. 하지만 "자연 환경 하에서 저절로 일어난 산불은 내버려둔다"는 겁니다. 나중에 보면 불 난 곳이 나무도 더 잘 자라고 곤충도 많아진다고 해요. 우리는 생태계의 자율신경을 존중하는 'Let it burn'의 섭리를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요?

저울과 도장의 부작용

옛날 중국의 사상가 장자는 "저울을 만들면 저울에 따라 물건을 훔치고, 도장을 만들면 도장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고 했어요('장자' 외편 거협). 저는 이 말을 "규제를 만들면 규제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라고 바꾸고 싶어요. 아무리 규제를 만들어도 새어나갈 구멍은 있기 마련입니다.

LH 사태가 터진 뒤 정부는 규제 그물코를 한층 더 촘촘히 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9급 말단 공무원까지 재산을 등록하라고 난리를 치네요. 과잉대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촘촘한 그물코를 완성하면 집값도 잡히고 투기도 사라질까요? 노·문 정부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부동산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부동산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이제 그만 부동산을 놓아주라

요즘 정치판을 보면 부동산 광기가 느껴집니다. 민주당과 국힘은 서울시장, 부산시장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을 합니다. 가장 치열한 싸움터는 부동산 전선입니다. 상대방의 땅, 아파트를 서로 물어뜯습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더이상 경제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입니다. 자연 해결책도 정치색을 띱니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경제로 접근해야 할 부동산 난제가 풀릴 리가 있나요.

김상조 전 실장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썼어요. 쫓겨나듯 청와대를 나온 건 자업자득입니다. 경제학자로서 정치판의 비이성적 대응을 방치한 것은 분명 그의 실책입니다. 그를 두둔할 마음은 일도 없어요. 다만 곰곰 따져보면 그 역시 빗나간 부동산 정치 광풍의 희생양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제2, 제3의 김상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죠.

정치에 피멍든 한국 부동산 시장이 불쌍합니다. 정치인 여러분, 여러분이 건드릴수록 부동산이 망가집니다.
부동산을 놓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정치가 부동산을 망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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