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변호사 익명으로 입장 들어
'변호받을 권리' 지켜져야 의견 모아
"고액수임, 눈쌀 찌푸려져" 입장도
거센 비판에도 유사사례 반복돼
[파이낸셜뉴스] '정인이 사건' 'n번방' '고유정 사건' '조두순 사건' 등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피의자들을 법률 대리하는 변호사를 바라는 시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뉘고 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입장과 이들 피의자에게 고액 수임료를 받고 변호하는 게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변호받을 권리' 지켜져야 의견 모아
"고액수임, 눈쌀 찌푸려져" 입장도
거센 비판에도 유사사례 반복돼
■"흉악범죄자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
일선 변호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3월 3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해 보면 상당수 변호사들이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일지라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란 입장도 적지 않았다. 고액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성범죄 가해자를 다수 변호한 이력이 있는 변호사 A씨는 “판결이 확정된 사건조차 나중에 뒤집힐 수 있고 재심사건들을 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0.0001%라도 억울한 점이 있으면 의뢰인 편에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설계된 게 지금의 제도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변호사 B씨 역시 “변호사법 제31조의 수임제한 사유에 ‘악자’는 들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국가가 법으로 제한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며 “공중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선택에 따른 부담도 변호사가 진다고 하면 문제될 건 없다”고 설명했다.
흉악한 범죄일수록 더 비싼 수임료를 내야 제대로 된 변호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C변호사는 “극악한 사건일 수록 많은 수사인력이 동원돼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아) 사건이 더 방대하고 어렵다”며 “범죄자가 그나마 제대로 된 변호를 받으려면 많은 돈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C변호사는 “범죄자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니, 그 자체가 범죄자에게는 징벌이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다수에 의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비난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수임하는 게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D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대중들이 먼저 판단을 내리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변호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북한식)인민재판이 아니냐”며 “(그런 사건을 맡으면) 사무실 직원한테 전화해서 욕하고 협박하고 인터넷카페에 비방성 글도 올리는데 그런 폭력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본질은 돈 받고 형 깎아주는 것"
고액 수임료를 받고 흉악범 사건을 맡는 건 업계에도 부정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E변호사는 “누가 봐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한테 거액을 받고 법의 허점을 이용해 조금 (형을) 깎자고 하는 그런 경우가 많다”며 “‘좋은 변호사는 죽은 변호사’라거나 ‘돈만 주면 악마도 돕는 게 변호사’라는 말이 있는데, 업계 전체를 욕먹이는 짓”이라고 평가했다.
F변호사는 “(로펌)내부 논의를 해서 아동성범죄나 집단강간 같은 사건은 수임하지 말자고 암묵적 합의를 봤다”며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나아갈 길은 아니고, 어쨌든 우리가 변호해서 이기든 지든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게 법조인의 길이 아니냐 (그런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경력 10년차 변호사 G씨는 사건 수임과 관련해 비난을 받자 사임한 후 수면 아래에서 법률적 조언을 하는 사례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G변호사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었는데 로펌이 알려지고 변호사 이름까지 나오니 사임은 했는데 뒤에서 계속 조언을 하더라”며 “비난은 싫고 이득은 챙기고 싶고 그런 모습이 보기 안 좋은 게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법조계에서 흉악범죄 사건 수임이 영업 및 홍보의 일환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H변호사는 “마약, 성범죄나 아동학대 같은 사건을 살펴보면 변호사들이 거절한 사건이 특정 변호사에게 몰리는 경우가 있다”며 “가해자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이 일어나니 알음알음 찾게 되고, 별 생각 없이 영업전략 삼아 그런 사건을 맡는 게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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