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우리편에 서라" 전세계 두 쪽 내는 미·중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04 17:43

수정 2021.04.04 17:50

미국 "反중국 뭉쳐라"
중국 일대일로 저지 향하고 있어
인권 문제 건드려 공공의 적으로
중국 "다자주의 수호"
코로나 백신·경제개발 지원
우호국 포섭… 외교·국방도 출격
북·러·유럽·중동 끌어안기 나서
갈팡질팡하는 한국
미국서 한·미·일 안보실장 회동
중국에선 외교장관 회담 가져
"우리편에 서라" 전세계 두 쪽 내는 미·중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세계 정세가 미국과 중국 중심의 '편 가르기'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이 반중국을 외치며 서방국가들과 공동 포위망을 구축하고 중국은 러시아, 북한 등 전통적 우호국과 대응 세력을 만드는 형국이다.

미·중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 이후 갈등이 한층 강화되면서 상호 입장을 재확인한 양국이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이 회담을 통해 기후변화나 북한 핵문제 등에서 일부 공감대를 형성했어도, 격렬한 마찰 과정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 문제와 홍콩, 대만,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은 전쟁 경고 수준의 발언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지만,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계기는 아직까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반면 세계 각국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줄 세우기 전략을 양쪽 모두 강화하고 있다.

■美, 서방&일본과 공동전선

일방주의, 자국 우선주의로 비판을 받던 미국이 다자주의 복귀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세력 형성에 나선 것은 올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가 돌아왔다"는 말로 향후 미국의 전략을 암시했다. 자국을 제외한 대부분 모든 국가를 경쟁상대 혹은 이익 침해 세력으로 규정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선을 분명히 그은 행보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통적 동맹 복원과 국제사회 리더 국가 회귀의 열쇠로 사용한 것이 '반중국'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중국의 팽창 억제로 삼고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따르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비롯해 행정부 수장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중국을 최대의 경쟁상대로 지정하며 트럼프의 대중국 전력을 계승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즉각적인 행동 실천에 돌입했다. 미국 내 문제를 해결한 뒤인 올가을 무렵부터 국외로 눈길을 돌릴 것이라는 당초 예측이 빗나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12일 일본, 인도, 호주와 중국 견제를 위한 협의체인 '쿼드' 첫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은 같은 달 15~18일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을 순방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19일에는 2박3일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해 군사·안보협력 강화에 들어갔다. 미국과 인도의 장관급 고위인사 대면접촉은 새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인도는 미국과 함께 4개국 협의체 쿼드 회원이면서 중국과 카슈미르 등 접경지역에서 수차례 군사적 충돌을 빚어왔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23~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유럽연합(EU) 고위인사들과 잇따라 접촉했다. 그는 알래스카 회담 이후 100곳이 넘는 외교장관과 통화하며 중국의 행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 총리와 통화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국가 인프라 계획을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대일로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해 중국의 경제영토를 확장하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정책이다. 2013년 시작돼 현재까지 100개국 이상 참여키로 했다. 지난해 중순 기준 일대일로와 연계해 추진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프로젝트는 2600개 이상이며 금액은 3조7000억달러(약 4200조원)에 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 총리와 통화 후 기자들과 만나 "나는 우리가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들을 지원하는 근본적으로 (일대일로와) 유사한 이니셔티브를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끌어내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EU와 영국, 캐나다 등 국가의 경우 신장지역 인권 문제로 미·중 전쟁에 끌어들였다. 지난 22~23일 미국과 이들 국가는 신장지역 인권 탄압에 관여한 중국 관리와 단체의 자국 입국금지, 자산동결, 자국 기업과 거래금지 등의 제재를 동시다발로 발동했다.

미국은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당시인 지난해 5월에도 유사한 규제를 가한 적이 있지만 EU가 인권 문제로 중국에 제재를 부과한 사례는 1989년 톈안먼 사태 때의 무기수출 금지 조치 이후 32년여 만에 처음이다. EU는 지난해 5월부터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추진할 당시 제재는 해법이 아니라며 미국과 달리 제재를 발동하지 않았다.

■中, 러·北·아프리카·중동 '러브콜'

트럼프 행정부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중국의 변화가 감지된 것도 올해 1월로 봐야 한다. 남중국해에 군사력을 보내거나 코로나19 방역 물품 및 백신 외교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도 존재했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다. 오히려 지난해 말에는 2014년 이후 7년간 끌어온 중국·EU 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하는 등 긍정적인 분위기도 일부분 형성됐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출범에 즈음해 4년 만에 다보스 포럼에 복귀한 시 주석은 재차 다자주의를 꺼내들었다. '작은 집단'이나 '신냉전'으로 서로 배척·위협하면 인류가 직면한 공통된 도전에 대처할 수 없으며 다자주의 핵심은 국제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논의하고 처리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다자주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지적하기 위해 중국이 국제사회에 수시로 꺼내들었던 이념이다. 중국은 자국을 이에 맞서는 '다자주의 수호자'로 홍보해왔다.

시 주석은 지난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에서도 다자주의 협력을 강조하며 에너지, 항공, 농식품 등 각 분야 교역을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미·중 양국은 코로나19 발원지 문제에 대해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였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중국은 미국을 향해 "홍콩, 신장 등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미국은 중국에 "공격적인 행동에 맞설 것"이라고 각각 경고하는 등 곳곳에서 마찰을 빚었다.

대신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는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코로나19 확산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중국산 백신의 무상 공급 혹은 저가 수출 등으로 '끌어안기'에 나섰다.

시 주석이 2~3월 두 달 동안 전화·서신 교류한 외국 정상만 폴란드, 프랑스, 한국, 카메룬, 라오스, 탄자니아, 쿠웨이트, 이집트, 콜롬비아, 러시아, 방글라데시, 트리니다드 토바고, 가이아나,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잠비아, 우간다 등 20개국을 훌쩍 넘는다. 시 주석은 이들 국가에서 코로나19 백신과 경제개발 지원, 문화 개방 등 필요한 분야를 각각 맞춤형으로 제안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 수장을 자국에 우호적인 국가 출신 인물로 채우거나 재정 지원하는 형태로 영향력 강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알래스카 회담 이후엔 전략적 협력 관계인 러시아 외무장관을 중국으로 불러 미국을 향한 비판을 함께 쏟아냈고 북한과는 구두 친서를 보내 '북·중 우호' 분위기를 띄웠다.

우호국 포섭에 외교·국방 라인을 출격시키기도 했다. 지난 2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지난 2월 카타르, 우간다, 잠비아, 쿠웨이트를 방문했고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오만을 찾아갔다. 웨이펑허 국방부장은 24~31일 일정으로 헝가리, 세르비아, 그리스, 북마케도니아 등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왕이 부장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 제재로 고립된 이란과 향후 25년간 정치·전략·경제 등에서 포괄적 협력관계를 이어가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하고 웨이 부장은 나토군의 오폭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자리를 찾아 "중국군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미·중의 가운데에 서있다. 지난 2~3일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은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등과 회동을 가졌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양자회담을 했다.
북한 문제 등이 의제였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한·미·중 속내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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