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임기 만 4년을 앞두고 '소(小)통령'이라고 불리는 서울시장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됐다. 여당이 갖던 서울시장 자리가 비자, 야당은 정권 심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계파 싸움을 봉합하지 못한 제1야당은 선거 패배에 익숙해진 채 여전히 지리멸렬했다. '이번 선거는 이겨야 한다'는 의지는 다졌지만, 막상 이길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야당은 여전히 무능했고, 여당은 여전히 오만했다.
그 상황에서 야권에서 '안철수'가 등장했고 그가 야권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그 이후의 시나리오는 시민들이 만들어줬다. 야권 단일화부터 시장 당선까지 시민들이 만들었다. 거센 네거티브 공방전이 거듭됐지만, 시민의 회초리가 여당을 때렸다.
갑작스러운 패배를 당한 여당은 당황했고 쇄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게 패배는 여당이 했지만, 승리는 분명치 않았다. 야권은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뚜렷한 대안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2021년 4월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1년 10월의 이야기이다.
이명박 정부 만 4년을 앞둔 2011년 하반기, 당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진행했지만 결국 시장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2011년 10월 26일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야권은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문재인, 이해찬으로 대표되는 친노(親盧) 세력과 손학규 등으로 대표되는 비노(非盧) 세력 간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노 세력 상당수는 아예 민주당 밖에 있었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제3후보로 출마했지만 얼마 후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 했다. 시민 후보를 자처한 박원순 무소속 후보는 야권 단일화 끝에,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당선됐다.
'오세훈'이 떠난 자리에, '안철수'가 '박원순'의 손을 들어줬고, '박영선'과의 예선서 승리하고, 결국 '나경원'에게 이긴 2011년.
'박원순'이 떠난 자리에, '나경원'과의 예선에서 승리한 '오세훈'의 손을, '안철수'가 들어줬고, 결국 '박영선'에게 이긴 2021년.
드라마를 만들라고 해도 쉽게 나오기 힘든 평행이론 시나리오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2011~2012년으로 돌아가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 이후 야권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동안 흩어졌던 야권 세력이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졌고, 민주당 밖에 있었던 친노 세력도 시민통합당을 만들어 민주통합당이라는 빅텐트를 쳤다. 무소속으로 있던 박원순 시장도 2012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2년은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함께 있던 선거의 해였다. 야당은 두 선거 모두 승리를 자신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자신들의 주특기였던 '야권연대'를 무기로 국회 과반 의석과 대선 승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멘붕'에 빠졌다. 그동안 MB(이명박) 청와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던 한나라당은 대통령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레임덕의 시작이었다. 친이계로 분류됐던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바로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 내 야당' 대표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표가 됐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당 간판부터 바꾸고(새누리당) 당을 전면 쇄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했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3세력의 정치인으로 분류되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전 교수는 '새정치'의 기치를 들고 정계에 진출했지만 정치적 미숙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재인 당시 후보와 단일화를 깔끔하게 하지 못해 대선 패배의 원인이 됐고 대선 직후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명박 정부의 여당 내 야당이었던 박근혜의 새누리당 쇄신. 야권연대에 매달렸던 민주통합당과, 2% 부족했던 거물급 신인 안철수의 잘못된 만남.
앞 문장에서 이명박 정부를 '문재인 정부'로, 박근혜를 '이재명'으로, 새누리당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민주통합당을 '국민의힘'으로, 안철수를 '윤석열'로 치환해 다시 읽어보자.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치는 생물이다. 예상대로,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2011년과 2021년의 평행이론이, 2012년과 2022년의 평행이론으로 이어질 수 없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 모두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는 예비고사, 모의고사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을.
결국 본 시험은 2022년 3월로 예정된 20대 대통령 대통령 선거다. 그리고 2022년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선거의 해다.
2022년을 바라보는 여야 모두 2011년과 2012년을 교훈·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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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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